“골동(骨董)요? 예술적 가치가 있는 고미술품 또는 우아한 소품이란 뜻이 있지요. 그런데 자질구레해서 무어라 분류하기 어려운 옛날 물건이라는 뜻도 있어요. 골동에서 ‘예술적 가치’나 ‘우아함’이 빠지면 엿이랑 바꾸어 먹을 폐품에 가까운 고물이죠.”

새봄, 새순 올라오는 철이라 그런가. 비빔밥 이야기를 해달라는 분도 부쩍 늘었다. 어떤 분들은 비빔밥에다 굳이 오색오미, 오방색의 철학, 한식의 도(道) 등등 넘칠 지경의 수사(修辭)를 이미 깔고 물어온다. 이때 비빔밥의 한자 표현인 ‘골동반(骨董飯)’이 비빔밥의 가치와 우아함을 단박에 드러낼 마법의 어휘로 보이기도 하나 보다. 아마도 ‘골동’이란 말이 훈련된 취향과 점잖은 취미의 후광을 뿜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그 후광이 너무 세, 골동품과 고물 사이가 아주 좁다는 점은 또 생각지 못할 수도 있긴 하겠다.

논의를 한국 음식 문화사 속 비빔밥에 맞추면 19세기 홍석모의 저술 <동국세시기>가 참고가 될 만하다. <동국세시기>는 오늘날의 비빔국수 방식의 국수를 ‘골동면’이라고 했다. 아울러 중국 강남 사람들이 ‘반유반(盤遊飯)’을 잘 만든다고 했다. 반유반이란 찬합의 바닥에 생선식해, 육포, 회, 구이 따위를 깔고, 그 위에 밥을 퍼 담아 들고 나가는 도시락이다. 이것을 놀던 자리에서 비벼 먹는다. 홍석모는 골동면에 견줄 만한 밥의 ‘골동’이라고 했다. 이 뒤로 골동반이란 말은 많은 문헌에 등장한다. 일상의 말과 일상의 실제 행위로 비빔밥의 속성은 충분히 설명이 된다.

“대저 부빔(비빔)의 출처는 골동에서 나왔다. 장사꾼이 무슨 물건이든지 오래되고 파상(망가진)난 헌 넝마까지 벌려놓고 팔고 사는 곳을 골동가게라 한다. [중략] 부빔밥(비빔밥)은 여러 가지 잡되게 섞은 것을 말한다.” 근대의 스타 요리인 이용기가 1924년 펴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실린 ‘부빔밥(비빔밥)’ 항목의 한 구절이다. 역시 충분하다. 음식에 관한 논의는 엄연한 물리적인 실제의 한 그릇에서 출발할 일이다. 말은 그 뒤를 따라오면 된다. 가령 홍석모와 동시대를 살다간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골동반 항목에다 나물, 생선회(숭어/갈치/준치), 생선구이(전어), 마른 새우 가루, 새우젓, 새우알, 게장, 달래, 오이, 구운 김 가루, 잘 익힌 매운 장 등 당시 사람들이 잘 먹는 비빔밥 재료를 소개했다.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비빔밥은, 밥상에 놓인 밥에다 어떤 재료고 숟가락, 젓가락, 손에 걸리는 대로 섞어 만든다. 만들기도, 먹기도 만만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요식업에 등장할 수도 있었다. 오늘날 꼬막이든, 멍게든, 상추든, 콩나물이든, 심지어 물기 자작한 불고기를 더해서든 온갖 비빔밥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오히려 이규경의 기록에 이어지는 오늘날의 비빔밥 풍경이다.

유래도 기원도 어휘도 오늘날 내 앞에 놓인 구체적인 비빔밥의 입장에서 살핌이 옳다. 이때에도 그 음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에 관한 설명과 이해를 빠뜨리면 허무한 정보 나열을 벗어나기 어렵다. 비빔밥에서 간장, 고추장, 기름장,  기타 별미장이 한껏 풍미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라. 밥의 상태와 특정 재료에 맞는, 섬세한 장의 안배는 비빔밥 고도화의 가능성을 다시 연다. 생선회비빔밥에는 겨자장을 쓰기도 했다. 섬세하게 감각하면 참기름의 미각도 새삼스럽다. 참기름을 적절히 다루는 데서 진짜 향신유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 재료와 재료가 따로 놀지 않도록 하는 달걀의 쓰임은 어떨까. 기름에 지질 뿐만 아니라 수란을 쓰기도 했다. 19세기 한글 조리서 <시의전서>에 따르면 비빔밥에다 양지와 갈비 육수를 바탕으로 해 끓이고 고명을 얹은 잡탕국을 붙여 한 상을 만들기도 했다. ‘걸리는 대로’라고 했지만 이를 ‘지역’과 ‘제철’과 ‘나의 기호와 취향’으로 바꿀 때, 비빔밥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쥔 음식이 된다. 번잡한 수사보다, 내 앞에 놓인 한 그릇 잘 살피기. 음식에서 이를 앞설 일은 없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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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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