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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넘게 출퇴근길에 청와대 앞길을 지나다녔기에 대통령 관저 이전과 청와대 개방에 대해 나름의 소회가 있었는데, 이제야 청와대를 관람했다. 청와대 주변길과 근처 동네는 산 아래 터를 잡은, 오래된 서울 특유의 지세를 보여준다. 도심 한가운데지만 비교적 고즈넉하고 산록과 계곡에 기댄 의외의 장소가 많다. 계절에 따른 숲과 나무의 변화도 잘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청와대 근처는 엄혹하고 어두운 현대사의 기억이 깃든 곳들도 많다. 4·19 때 이승만의 부하들이 시민·학생들에게 총을 쏴 100명 넘게 죽고 상하게 만든 곳, 북에서 온 김신조부대와 군경이 교전하여 피 흘린 곳, 그리고 박정희가 부하의 총을 맞고 죽은 궁정동은 흔적만 남았는데도 섬찟했다. 

그리고 지난 10여년 사이에 청와대 앞길과 주변 동네의 분위기는 정세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바뀌어왔다. 이명박 시절까지 청와대 앞 도로는 접근하기 어렵고 고압적인 경호 때문에 괜히 긴장되거나 불쾌한 곳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청와대 근처의 분위기는 빠르게 변했다. 사람들은 좀 더 과감하게 근처에서 1인 시위를 했고, 특히 ‘촛불’ 때 수많은 군중이 광화문에서 모여 청와대 입구까지 행진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새삼 외쳤다. 박근혜가 극적인 방법으로 청와대에서 쫓겨난 때의 날들도 생생하다. 청와대 앞길은 문재인 정부 때 24시간 개방됐고, 검문과 통제 방법도 바뀌었다. 분수대 근처는 늘 시민단체와 억울한 사람들이 시위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데가 되었다. 

그런데 올해 봄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 앞길을 지키던 무장 경호원들과 경찰관들이 한순간 다 사라졌다.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던 많은 초소도 빈 채로 버려졌다. 어떤 무상함을 느낄 틈도 없이 ‘태극기 노인’풍의 시민들이 주변을 꽉 메웠다. 그런 상황은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구호와 달리 청와대를 다시 어색하고도 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 들어가보고 차라리 청와대에 대해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느꼈다. 인왕산을 옆에 놓고 북악산에 안겨 있는 청와대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자연과의 조화’는 이 공간의 가장 큰 특징 같았다. 청와대 경내에는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흐르고 오랜 나무들과 북악산으로 통하는 등산길이 있다. 이에 비하면 본관이나 관저 안의 실내장식이나 가구는 유행이 지난 색으로 일관되게 꾸며진, 세련되다고 하기 힘든 소박한 것들이었다. 같이 관람하던 어떤 이는 ‘안 좋아할 만했겠구먼, 그래서 900억원 들여 영빈관을 짓겠다는 건가’라고 농담(?)했다.

대통령 집무공간의 표준을 알 수 없고 청와대를 어떤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 관저와 비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청와대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치와 지정학과 또 그에 대한 주권자들의 총체적 상상과 경험이 반영된 공간이란 것은 새삼 깨닫는다.

그런 점에 비추어 지금의 청와대 전시(?)와 관람은 뭔가 대단히 부적절하거나 역설적인 것이다. 청와대를 문화재나 역사적 공간으로 다룬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춘추관 입구의 아주 짧은 설명 외에는, 청와대가 품은 복잡하고 긴 역사는 전체적으로 삭제돼 있다. 해설사가 있지만 부족했고 관람객을 위한 안내도도 부실했다. 한반도와 통영을 훌륭하게 표현한 그림이나, 뭔가 강한 표현주의적 의도가 담긴 듯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초상의 작가 이름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준비 안 된 개방과 의미가 비어 있는 ‘전시’는 오히려 청와대가 지금도 여전히 격한 정치적 논란의 공간임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인가? 대신 수개월 만에 청와대는 서울의 주요 관광지가 되었다. 이제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동의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보통의 가족들, 서울구경을 오는 지역의 주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 지난 연휴에도 미어터졌다. 도떼기시장 같아서 차분한 관람이나 사고는 전혀 불가능했다. 화장실이 부족한 탓인지 아무 데서나 용변을 보는 관람객도 있다고 한다. 지금을 포함해서 청와대의 많은 곡절은 한국 대통령제의 그것과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벌써 6개월이 돼 간다. 취임 이후 줄곧 기록적인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통령의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마음 좋은 사람들은 아직도 정권 초기라는 것을 고려하여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며 조언한다. 누구를 위한 어떤 성공인가. ‘날리면’과 ‘Yuji’는 벌써 이 사회의 언어와 문화의 상태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국민 주권’이 행사되는 방법은 다양하다. 청와대의 한국 현대사는 그것을 증명해왔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연재 | 정동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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