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에서 천정(天正) 시대, 그러니까 서기 1573~1592년 사이에 나가사키로 처음 들어왔다. 중개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었다. 그 조리 방법은 이렇다. 달걀, 설탕, 밀가루, 꿀, 맥아당(조청), 우유 등을 섞어 뻑뻑한 반죽을 만들어 나무틀에 붓는다. 틀은 일본에서 구하기 쉬운 삼나무 계통 목재를 쓰면 그만이다. 반죽은 오븐에 넣고 구워야 한다. 번듯한 유럽식 오븐을 당장 만들기 어렵다면? 쓰던 아궁이 또는 화덕을 손보아 대류열을 가둘 공간을 확보하면 그만이다. 대단한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원리를 파악해, 내가 구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쓸모 있는 사물을 만들어 내는 솜씨 또는 그 결과를 ‘브리콜라주(bricolage)’라고 한다. 브리콜라주로 조리의 한 고비를 넘기면 결과를 기대할 만하다. 한 시간쯤 불 조절에 주의해 잘 구우면 맛난 과자가 완성된다.

눈치챈 독자도 있으리라. ‘카스테라(カステラ)’ 이야기다. 더 들어가 보자. 일본인은 자완무시(茶碗蒸し)를 익히 먹어왔다. 일식 달걀찜인 자완무시는 설탕과 다디단 요리술을 섬세하게 써 특유의 질감과 풍미를 구현한다. 남중국, 동남아시아, 유구(오키나와)와 이어진 무역 덕분에 쓰자고 하면 일본인에게 설탕이 없지 않았다. 이윽고 네덜란드와 영국이 정제당의 시대를 열자 일본인은 정제당에도 금세 적응했다. 이때 비정제당 경험은 유용한 참고서이자 훌륭한 조력자였다. 자완무시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카스테라에 또 다른 상상력을 빌려주었다. 자완무시의 맛과 조리의 설계에서 연역하면 이렇다. 카스테라란 밀가루 전분의 호화(糊化)가 낀 데다 설탕과 우유에서 비롯한 독특한 질감과 풍미까지 기대되는 새로운 자완무시이다. 대류열에 굽는다지만 반유동 상태의 반죽이 머금은 물기는 찌는 효과도 낸다. 틀에 쓴 나무는 물기를 붙들어주는 소재이다. 시도와 시도를 거듭하는 가운데 내 입맛의 기호와 공동체의 선택이 그다음 진화의 동력이 되었다.

맥아당, 꿀, 설탕을 섬세하게 매만진 끝에 구현한 쨍하면서 깊은 단맛, 우유와 벌꿀이 배가한 풍미, 찜의 여운이 있는 스펀지의 물성 등은 이베리아 ‘카스텔라(castela)’와는 다른 ‘카스테라’의 속성이고 개성이다. 16세기 이베리아(포르투갈-스페인)의 카스텔라를 시조라고 한다면 일본의 카스테라는 시조와 나란히 설 만한 중시조다. 일본 제과인들은 이베리아에서 유래해, 일본 제과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꽃피어, 오늘날 동아시아 사람이 공유하는 카스테라를 일본 과자로 여긴다. 먹는 분야에서 ‘힙스터’를 자처하는 유럽 사람들에게도 카스테라는 일본 과자로 보인다. 일본풍 찻상과 함께라면 더하다. 카스테라는 메이지 시대 이후에 꽃핀 구미풍의 양과자(洋菓子)가 아니라 일본의 전통 과자, 곧 화과자(和菓子) 동아리에 들어간다.

1718년에는 본격 제과서인 <어전과자비전초>가 등장한다. 여기에도 이베리아발 과자의 원리와 본질에 파고든 흔적이 역력하다. 달걀을 예민하게 대하고, 달걀 거품을 잘 쓰고, 대량의 설탕을 적절히 통제하는 데서 이베리아 및 유럽 제과의 특색을 발견한다. 낯선 재료인 밀가루와 낯선 기술인 제빵 또한 일본식으로 소화한다. 가령 술이나 술지게미를 써 반죽을 부풀린다는 제안도 흥미롭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옥수수술빵의 원리다. 상상력과 시도는 메이지 시대로 이어졌다. 문호 개방과 함께 폭발한 서양 제빵제과의 이입은 두 번째 도전과 도약의 계기였다. 

눈 돌려 오늘 내 나라를 바라본다. 슈니발렌, 벌집아이스크림, 대만카스테라, 뚱카롱, 흑당 음료 등등 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유행이 명멸한다. 무엇이 의미 있는 시도이고 무엇은 유산되지 못할 우발적인 등퇴장인가? 무엇이 한국적 재해석이고 무엇은 열화복제인가? 열화복제라도 쌓기만 하면 유산이 될까? 아니 쌓은 게 있긴 한가? 운산조차 벅차다. 유행의 현황에 관한 중계보다, ‘뚱카롱은 한과다’와 같은 명제에 대한 답을 찾기보다, 관찰자의 착잡함부터 굳이 남긴다. 이 착잡함이 나와 내 동포에게 유산이 될 수 있을지조차 회의하면서.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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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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