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휴게소에 잠시 내렸다. 15분의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실에 잠깐 들른 후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터라 출출했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주문대로 갔다. 사람 대신 사람 키의 입간판이 맞이했다. 더 이상 사람이 주문을 받지 않으니 키오스크(Kiosk)라는 무인자동결제기를 사용하라고 일러주고 있었다. 키오스크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스크린 터치를 몇 번 하다 연이어 실수를 하니 조바심이 났다. 우물쭈물 제대로 주문도 못하고 나왔다. 가판대에서 핫도그나 살까 했더니 여기도 키오스크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 포기하고 돌아섰다. 어느새 버스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늦은 저녁에 식당에 갔다. 식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가 둘러보았지만 손님은커녕 주문받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속이 훤히 보이는 주방에 요리사만 달랑 있었다. 키오스크를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지난번 경험도 있고 해서 이번엔 아주 자신만만하게 키오스크 앞에 섰다. 몇 번의 스크린 터치를 통해 무사히 주문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것 같았다. 시어머니가 아주 호기롭게 음식을 사겠다고 한다. 그런데 키오스크로 주문한다는 말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며느리가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나서자 아니라며 신용카드를 뽑아든다. 몇 번의 실수를 거듭하자 보다 못한 며느리가 자기 신용카드를 꺼냈다. 가벼운 실랑이가 오간 후 결국 시어머니는 포기하고 며느리가 계산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나 활용되었던 키오스크가 일반 식당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비스’는 키오스크에 떠넘기고 ‘물질’을 팔고 있다. 명분은 효율성이다.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의 욕구를 최대한 빨리 성취하게 해준다. 판매자는 인건비를 줄여 더 많은 이윤을 빨리 뽑아낸다. 구매자는 표준화된 제품의 카탈로그에서 원하는 음식을 골라 최대한 빨리 위장의 결핍을 채운다.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이를 사회의 맥도널드화라고 일찍이 말했다. 맥도널드화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효율성이다. 하지만 판매자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구매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니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효율성마저도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이를 깨닫게 되면 구매자의 방문이 줄고 판매자의 이윤도 축난다.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고객이 무인 키오스크를 이용해 햄버거를 주문 하고 있다. 주영재 기자

일반 식당에까지 키오스크가 확산되는 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키오스크 사회’로 대전환하고 있다는 메타포다. 문화적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대전환은 양가적이다. 우선 전자기기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행위자에게 자유를 준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전자기기를 통해 매개되어 있기 때문에 익명성이 극대화된다. 그들 모두 사람으로서 마땅히 주고받아야 할 의례의 압박에서 벗어난다. 서비스산업이 요구하는 감정노동과 감정관리의 필요성이 줄어든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사회학자 지멜이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든 ‘사회적 어울림’(sociability)을 쪼그라트린다. 사회적 어울림은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마치 동등한 것처럼 대하는 동시에 서로를 독특한 존재로 존중한다. 신분제를 제거했다는 현대사회에서도 시민들은 여전히 사회구조적으로 동등하지 않다. 그럼에도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사회적 어울림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키오스크 사회는 다른 시민들과 마주할 사회적 장을 줄임으로써 이러한 문화적 역량을 키울 기회 자체를 축소시킨다.

키오스크와의 상호작용이 사회적 어울림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전자기기와 상호작용하려면 교육받아야 하듯 사람과 상호행위하기 위해서도 배워야 한다.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대할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을 습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게임을 펼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키오스크의 확산을 단지 경제적 효율성이나 접근의 평등성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키오스크 사회가 번져갈수록 더욱더 사회적 어울림의 공간을 이곳저곳 널리 구축해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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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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