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모습이라도 일상은 나를 이루는 터전이다. 특별한 것 없지만 늘 항상 그러한 것. 바로 거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나타나면서.

아이의 개학이 몇번 미뤄지고 보육을 위해 연차를 냈다. 사람이 가득찬 지하철로 출근하면서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동료들과 회의할 때도 마찬가지다. 쇼핑은 가능하면 온라인을 이용한다. 운동을 하러 가지 않는다. 가능하면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외식을 줄인다. 퇴근 후 영화 한 편, 맥주 한 잔도 바이바이. 바로 지금 휴대폰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긴급재난문자’가 울린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직장인 지침. 유증상 시 재택근무, 직장 내 2m 거리 두기, 마주 보지 않고 식사, 다중공간 사용 않기, 퇴근 후 바로 귀가하기.” 일상이 어그러지면서 불안해지고, 불안하니까 움츠러든다. 견고한 일상에 발을 딛고 ‘나’와 ‘내 주변’ 너머를 살피던 사람들이 점점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름으로 나의 일상을 ‘3인칭 시점’으로 볼 수 있게 되자 타인의 일상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특히 일상이 남들보다 더 위태롭고 팍팍했던 이들, 균열로 인한 흔들림의 강도는 더 셀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일상이 그렇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주문과 택배 배송이 늘어나는 가운데 40대 비정규직 배송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회사 측은 배송 물량이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 현장의 말은 이와 다르다. 플랫폼 노동이나 배달 시장이 코로나19 와중에 그나마 버티는 시장이라지만, 종사자에 대한 처우나 안전은 늘어나는 물량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한 사업장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마스크를 지급받지 못하거나 지급받더라도 방한대였다고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1급 방진마스크를 받았는데 말이다. 누군가는 답답한 콜센터에서 여전히 전화를 받는 업무를 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전화를 받아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수 있어 죄송하다”고 하면서.

와이파이를 잡으려 화장실에 쪼그려 앉은 영화 <기생충> 속 기우·기정처럼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책상과 휴대용 스탠드를 메고 와이파이를 찾아 산에 올라 인터넷 수업을 들어야 했던 한 중국 중학생의 이야기는 디지털 격차를 보여준다. 대학 강의들이 화상수업으로 전환했지만 수화나 자막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학습권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균열은 오히려 일상을 고스란히 들춰냈다. 없는 게 아니라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일상. 코로나19 이전에도 비정규직들은 계속 차별철폐를 외쳐왔고, 플랫폼 노동자들은 형태가 녹아내려버린 노동을 담을 틀을 요구해왔으며, 디지털 격차와 장애인 학습권은 오래됐지만 쉽사리 해결되지 않은 이슈였다.

일상의 균열이 생길 때 비로소 드러나지 않던 이들의 일상이 드러난다는 점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이제 그 아이러니를 조화로 바꿀 수 있을까. 서로가 거리를 두고, 더 넓은 시야를 확보했으니 협력과 연대의 둘러보기는 가능하지 않을까.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던 코로나19가 부각한 상처들을 치유해야 하지 않을까.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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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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