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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월이면 정부가 새롭게 출범한다. 목하 대선 주자들의 ‘캠프’에서는 대선에 나설 채비를 하는 ‘주군’을 위해 각종 정책들을 만들고 다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책들의 대다수가 최소 20년 이상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담긴 의제라기보다는 단타 위주의 현안에 집중되어 있을 게 분명하다. 이를테면, 다음 세대를 고려한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대통령의 임기 5년 내에 성과를 내는 것에만 집중된 정책들이 시간에 쫓겨 직조(織造)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에서 각 캠프에서 쏟아내는 정책들을 임기 내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모두 내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여태껏 그런 대통령은 없었다. 여기에다 전문가들 다수가 세불리기 차원에서 급조되다 보니 이들 간 화학적 결합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이 내놓는 정책보고서의 품질이라는 게 기대 이하이기가 일쑤였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의 캠프에서 경쟁하듯 내놓는 정책들의 휘발성 현상을 일찍이 간파한 고 박세일 교수가 15년 전 ‘국가전략기획원’ 설립을 주창했지만 이마저 유야무야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서’를 벤치마킹하여 2004년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가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를 발간한 것이 한국판 국가안보전략서의 시초였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2009년에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비전과 전략: 성숙한 세계국가’를, 박근혜 정부는 2014년에 ‘희망의 새시대: 국가안보전략’을 작성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도 2018년 11월에야 발간됐다. 모두 정권이 출범하고 1년이 지난 후였다. 나침반도 없이 먼 항해에 나선 셈이다.

더군다나 국가안보전략서는 개별 정권마다 목표가 상이함은 물론 알맹이가 없는 내용들로 느슨하게 구성됐다. 국가이익이라는 게 본래 고정불변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화해 나가는 생물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는 해도 역대 정부들의 국가안보전략서는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명민하게 파악하고 이를 제대로 담는 데 실패했다. 내 눈에는 마치 공갈빵처럼 보였다.

2년 전 나는 이 지면에서 “이제라도 국가이익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자주적이고 유연한, 창의적 외교전략을 수립하기를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외교전략의 상위개념인 국가안보전략서가 처음 나온 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2022년 국가안보전략서’에는 다음과 같은 화두를 놓고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한 결정들이 담겨지길 기대한다.

첫째, 한국은 자주외교(또는 균형외교)를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인가? 둘째, 한국은 통일을 지향하는가, 아니면 평화를 추구하는가? 셋째, 북한 핵을 포함하는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억제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넷째, 위계적 동맹구조 속에서 자주국방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다섯째, 한반도 냉전구조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여섯째, 인구감소로 인한 병력자원 급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일곱째, 에너지·식량 위기 및 기후재앙 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가안보전략서는 고품격, 고난도의 음식을 만드는 비법이 담긴 요리책과도 같다. 검증된 레시피만 있으면 요리사가 별 다섯 개짜리 음식을 내놓는 일은 어렵지 않다. 국가안보전략서의 기본 전제는 북한 비핵화를 유도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안정적인 역내 환경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한국 외교안보의 공간이 확대되는 전략으로 큰 틀이 잡혀야 옳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실용적으로 균형을 갖추고, 논리적으로 짜임새 있게 교직된 국가안보전략서를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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