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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한국이 대외적으로 마주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연구하며 전망하다 보면 많은 사안에서 다양한 고민과 우려가 쌓이게 된다. 미래의 국가 운명이 좌우될 현재의 현안들과 관련하여 주변의 강대국들은 국익이 충돌하고 이로 인해 힘겨루기와 편 가르기가 한창이다.

속칭 주변 4강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하에서 유럽연합(EU) 및 아세안(ASEAN) 국가들,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경쟁하는 미·중을 바라보며 이들 공동체와 국가들은 먼저 자신들의 가치와 국익을 정의하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군사안보적·정치적 주요 현안들에서 각각의 입장과 미·중 사이의 위치를 정하고 있다.

이들에 비해 한국의 움직임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보다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뒤처져 있는 모습이다. 미·중 사이의 주요 현안들에서 한국의 가치와 국익이 무엇인지가 잘 보이지 않거나 혼란스럽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첨단산업을 필두로 한 경제 분야에서 미래의 먹거리와 국가경제를 좌우할 국제규범과 기준 수립 및 국가 간 첨단 산업 생태계 구성 논의와 지분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물론 이전의 ‘전략적 모호성’을 활용하던 시기와 비교해 한국의 대응 원칙이 조금씩 구체화되는 모습은 긍정적인 요인으로 생각한다. 한국은 그간 QUAD 및 코로나19 방역 등의 현안을 다루며 개방성, 투명성, 포용성, 민주성, 국제규범 준수 등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특히 지난달 한국 정부는 QUAD 관련 현안에서 특정 국가를 배척하거나 견제하기 위한 배타적 지역구조는 만들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실상 미국의 QUAD 관련 참여 요구에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현재의 미·중 전략적 경쟁의 현황과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대중정책의 방향성을 본다면 트럼프 대통령 시기에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이에서 표명했던 입장, 즉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은 동의하지만 특정국가(중국)를 배제하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주장으로 대응하기에는 당시의 상황과 비교해 현재의 미·중관계가 이미 또 다른 변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이 특정국가 배제 반대 입장을 피력하면서 QUAD 참여에서 한발 물러서자 곧바로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가 지난달 10일 한·미 간 개최된 한 화상 토론회에서 QUAD는 특정 국가를 배제하겠다는 방향성은 없다고 밝히며, QUAD는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원칙적으로 코로나19, 기후변화 대처 등 공동의 문제를 논의하는 모임이라고 정의했다.

내퍼 부차관보의 이 발언은 실제로 트럼프 때와는 다른 바이든 행정부 대중정책의 핵심 중 하나를 설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본격적인 전략적 경쟁을 시작하며 미국의 힘을 과대평가했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중국쯤은 눌러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임기 후반에 접어들어 중국의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점차 동맹국들과의 협력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트럼프는 경시하던 동맹국들에 협력을 요구하며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배제하는 데 동참해 주기를 바랐다.

트럼프의 리더십에 실망하고 중국과의 경제적 이익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EU를 포함한 다수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의도대로만 움직여주지 않았다. 당시 싱가포르의 특정국가 배제 반대 주장도 이들 사이에서 공감을 일으켰던 배경이다.

바이든 행정부 또한 대중정책의 실행에서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트럼프 시기와 비교해 미묘한 차이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동맹국을 사실상 압박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들과 각 영역에서 이익과 지분을 나누며 미·중 사이의 주요 현안별 국제규범과 기준을 수립하고 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는 과거 오바마 행정부 시기의 정책과 유사하게 중국의 ‘배제’를 내세우기보다는 미국과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이 확립한 국제규범과 기준에 대한 중국의 ‘수용’을 압박해 나갈 것이다. 이미 이익과 지분이 공유된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 또한 중국의 ‘수용’을 점차 요구할 것이며, ‘수용’ 후에는 새로운 규범과 질서가 장악한 중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앞다퉈 다시 중국으로 뛰어갈 것이다. 21세기 제2의 ‘아편전쟁’일 수 있는 미국 주도의 규범과 질서의 경쟁과 이익과 지분의 조율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한국의 모습에 다시금 노파심이 생긴다.

김한권 전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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