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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했다. 추석 기념으로 이렇게 비틀어 보면 어떨까. 텔레비전은 방에 걸린 최신식 달이다. 올 명절에도 둥근 달은 물론 네모난 달을 많이 보았다. 채널을 돌리다 걸린 <대서사시 옐로스톤>의 한 대목에 잠자리가 등장했다. 3억년 전 진화를 거친 끝에 생명체 중 가장 먼저 공중을 날아올랐다는 잠자리의 시야는 360도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 눈으로 멀리 지나가는 먹잇감을 포착해서 재빨리 낚아챈다. 연이어 시청한 영화 <마션>의 한 컷. 화성에 홀로 고립된 동료를 지구로 데려오기 위해 우주에서 필사적으로 도킹하는 장면은 잠자리의 그것과 어쩌면 그리 물리적으로 비슷한가.


떼 지어 나는 새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북적거려 계절마다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가는 행로가 맞는가. 새들도 불안한지 주소를 주고받는다. 끼룩낄룩 낄룩끼룩. 제사 지내고 허전한 마음 달래려 자유로를 달렸다. 하늘처럼 땅도 평소와는 퍽 다른 풍경이다. 임진각은 망향객으로 몹시 붐빈다. 자격 없는 나는 화석정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율곡의 한시와 우람한 느티나무를 일별하는데 수령 267년의 향나무 아래에서 이것 좀 보라며 아내가 소리를 친다. 우주선, 아니 헬리콥터를 빼닮은 잠자리를 기대했더니 반짝이는 날개를 단 개미들이다. 수피는 적갈색이고 껍질이 길게 벗겨지는 향나무. 이 나무로 만든 연필은 향기도 좋았지. 그 미끄러운 줄기를 운동장처럼 가지고 노는 개미들. 나무에 난 작은 구멍을 중심으로 개미들이 병목현상이나 충돌사고도 없이 분주히 들락날락거린다. 


쓸쓸하자고 추석은 마련되었는가. 문득 흘러가는 것들을 관찰해본다. 하늘에는 구름, 임진강에는 물, 국도에는 차 그리고 향나무에는 개미들이 어디론가 가는 중! 이 묵묵한 풍경에 일조하는 향나무는 입도 없지만 발도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만 하지는 않았으니 옆으로 내달리며 굴러떨어지는 것들과 달리 나무는 가장 천천히 정면으로 걸어간다. 내년에도 무사히 내 그늘로 오시게. 서로 닮은 얼굴들에 비슷한 걸음걸이로 곧 흩어질 대가족을 굽어보면서 향나무는 묵직한 한 걸음을 하늘로 내딛고 있었다. 향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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