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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난 저출산이 ‘문제’라 생각지 않는다. 인간을 국력으로 보고, 젊고 건강한 노동력이 많아야 한다는 사고는 근대 남성 중심 인구학(demography)의 유산일 뿐이다. 한국 사회의 여전한 해외 입양과 중장년 실업을 생각할 때, 저출산으로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남한의 인구 밀도는 OECD 국가 중 1위,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3위다. 무엇보다 문제는 인간이 바이러스로 취급되는 시대에 전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가 해결되더라도 팬데믹이 지속되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인간의 착취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지구가 인간을 공격하는 시대, 생물체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동물학이 식물학보다 ‘우월한’ 분야라는 인식이 강했다. “식물인간” “식물국회” 같은 비유는 식물에 대한 ‘동물적’ 인식을 보여준다.

미국의 생물학자 바버라 매클린톡(1902~1992)은 여성 단독으로는 최초로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 자체로 역사를 새로 쓴 여성이지만, 그는 평생 주변적 분야로 인식돼온 식물학을 공부했다. 옥수수 연구를 통해 “유전자가 이동한다”는 주장으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물리학자 이블린 폭스 켈러는 매클린톡의 사상과 생애를 담은 책 <생명의 느낌>에서, 여성 연구자로서 매클린톡의 중요한 성취 중 하나를 새로운 연구 방법이라 주장한다. 연구 대상인 식물과의 ‘교감’이 그것이다. 동물 실험의 윤리 논란을 상기하면,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지구 멸망이 영화의 주제나 어린 시절의 상상이었던 시절은 지났다. 아마존은 매년 목장으로 변하고 있다. 환경학자들은 아마존이 170년 후엔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51%를 가축이 방출한다. 육류 산업으로 미국 곡물의 70%, 전 세계 곡물의 30%가 가축 사료로 쓰인다. 이 곡물이면 전 세계 인구 20억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일단 소는 풀을 먹어야 하는데 곡물을 먹이는 것 자체가 문제다.

늦가을이 되면 버려진 화분들이 많다. 화초는 겨울에 가습기 역할도 하고 좋을 텐데, 왜 버리는지 모르겠다. 거두지 않으면 얼어 죽을 것이다. 하지만 버린 물건을 줍는 행위는 불법(절도)이다. 유기된 식물을 살리려면 주민센터 → 주인 찾기 → 허락 등 내 기력으로는 버거운 일이라 며칠을 화분 주위를 기웃거렸다.

유기된 동물은 구조해도 범죄가 안 되는데, 왜 식물은 구조하면 범죄인가? 동물은 ‘생명’으로, 식물은 ‘물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범죄자가 되더라도 화초가 상하기 전 집으로 가져왔다. 그래도 동물은 스스로 이동하므로 유기되더라도 식물보다 살아날 확률이 높지 않은가.

현재 지구상 인구는 78억명. 인간보다 개체 수가 적은 생명체가 부지기수다. 인간의 삶도 천차만별. 적어도 열 명 중 한 명은 기아, 물 부족, 국지전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극심한 가뭄으로 경제난에 시달리는 나미비아 정부는 지난해 버펄로 등 야생동물 1000마리를 경매에 내놓았다. 올해는 코끼리가 2만4000마리로 증가했다며 코끼리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코끼리는 상아부터 뽑힐 것이다. 야생동물을 팔아 식량을 구하기보다 국제사회의 연대가 절실하다.

동물은 잡식이든, 채식이든 자기 외부를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이라는 동물은 먹을거리를 축적한다. 반면, 식물은 다른 생명을 먹지 않고 광합성, 자연의 원리에 따라 자신을 비워서(부엽토) 생명을 이어간다.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이동하지 않는다. 식물이 동물보다 열등한 생명체라는 인식은 이동성과 관련이 깊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은 이동 능력에서 시작하고, 공격성과 속도로 연결된다. 장애인, 노인, 건강 약자의 시민권은 식물성에 대한 평가와 관련이 있다.

지구상 최고의 포식자인 인간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고통받고 있다. 자본주의를 당장 멈출 수 없다면, 식물의 생존 원리는 인간의 운명을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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