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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반구 한국에서 남반구 호주까지는 비행기로 10시간 걸린다. 지리적으로 먼 나라다. 국토 면적 등은 차이가 크지만 경제규모는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7일 발표한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한국은 10위(1조6421억달러), 호주는 11위(1조4210억달러)였다. 국제정세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닮았다. 최근 필사적으로 맞붙고 있는 미·중 갈등을 지켜보는 속내가 복잡할 것이다.

호주는 미국과 전통적 동맹관계이다. 미국·영국·캐나다·뉴질랜드 등 영어권 5개국의 기밀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구상에 일본·인도 등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호주의 최대 교역국이다. 수출의 30%에 이를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매여 있다 보니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보호주의 강화, 중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호주는 요즘 미·중 양쪽으로 시달린다. 중국은 최근 호주산 보리에 73.6%의 반덤핑 관세, 6.9%의 반보조금 관세를 5년간 부과하기로 했다. 호주 총리가 지난달 코로나19 발원에 대한 국제조사를 지지한 것을 문제 삼은 보복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호주 빅토리아주가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 참여를 강행하려 하자, “우리의 안보망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면 그냥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백악관이 지난 21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미·중은 신냉전 단계에 접어들었다. 리처드 닉슨(37대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44대 대통령)까지 공화당·민주당 출신 정당에 관계없이 이어진 미·중 협력 기조가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미·중관계 개선을 주도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이름을 딴, 이른바 ‘키신저 질서’도 끝났다.

물론 작금에 벌어지는 일들이 전혀 느닷없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세계 최강국 지위를 노리는 중국과, 기어오르지 못하게 짓누르는 미국의 갈등은 무역을 넘어 외교·군사 등 전방위에서 진행형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미·중이 ‘홍콩 이슈’로 격하게 대립하겠지만 이 또한 갈등의 한 양상일 뿐이다. 21세기 글로벌 패권 다툼은 누가 이길지, 승자는 있을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코로나19 와중에 불거진 미·중 간 대치는 세계질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드러났듯 미국은 부실한 방역 대응으로 내부에서도 혼란상을 키웠고, 중국은 발병 초기 투명하지 못한 태도로 국제사회에서 미운털이 박혔다.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코로나19 국면에선 세계 리더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중국에, 중국은 미국에 맞서줄 ‘믿을 수 있는 국가들’을 모으는 데 부산하다. 

한국도 배타적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 주도의 탈(脫)중국 글로벌 생산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 문제도 그중 하나다. 한국 입장에선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보다 ‘동맹’인 미국을 먼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웃국인 중국에 구조적으로 의지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외교 입장에 서왔다. 실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지워버리는 적대적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국제정치의 격변 상황에서 일관된 원칙으로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통해 미·중 갈등의 파장이 한국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줄이고,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개방형, 신뢰, 투명성, 민주주의 질서 등을 주요 가치로 제시했다.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기조를 외교에도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신남방정책, 중견국 외교 등에 속도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명확해야 한다. 북한 문제가 미·중에는 정책적 우선순위에선 차이가 날지언정, 모두 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중국도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원하고, 그 과정에서 북한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배척할 수 없지만 그 중심은 한국이 잡아나가야 한다. 미·중에 휘둘릴 사안이 아니다. 한반도의 미래와 직결된 일이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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