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본 관객이라면 다섯 살짜리 유키가 그 작은 발로 깡충깡충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났던 ‘삑삑~’ 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유키는 그날 행복했다. 열두 살인 큰오빠 아키라와 언니 교코, 작은오빠 시게루와 함께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외출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발에선 삑삑 소리가 났다. 앙증맞던 그 소리는 아마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내민 작은 손 같은 게 아니었을까.

유키의 엄마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어린 남매들을 놔두고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약간의 돈을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맏이 아키라는 사회와 이웃의 무관심 속에 동생들과 함께 굶주리며 유령 인간처럼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유키는 병을 얻었고 결국 언니·오빠와 작별하고 하늘로 떠난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한장면

1988년 도쿄에서 실제 일어난 어린이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는 사회의 무관심 속에 고립된 채 고통을 겪는 아이들, 약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2005년 국내 개봉된 <아무도 모른다>의 마지막 장면은 남은 아이들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성장과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담았지만 극장 밖 세상에선 더욱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병든 몸으로 생활고를 겪던 세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2014년 벌어졌고, 지난해 ‘증평 모녀 사건’ ‘구미 부자 사건’ 등에 이어 올 초 ‘망우동 모녀 사건’이 일어났다. 모두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 육체적·정신적 고통 등이 수년간 지속되며 낳은 비극이다. 급기야는 며칠 전 영화 속 유키처럼 앙증맞은 신발을 신었을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북한이탈주민인 40대 엄마와 함께 굶어죽은 채 발견됐다. 사람이 아사(餓死)한 것이다.

모자의 죽음은 수도검침원이 이들이 살고 있는 한 임대아파트에 직접 찾아가면서 알려지게 됐다. 몇 달째 요금미납으로 단수조치가 된 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긴 것이다. 경찰은 시신 부패 등 정황을 볼 때 모자가 두 달여 전 죽음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견 당시 냉장고는 텅 빈 채 먹을 것이라곤 고춧가루뿐 아무것도 없었고, 엄마의 통장 잔액은 지난 5월 3858원을 인출한 후 0원 상태였다. 방문에는 아이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철없는 낙서가 쓸쓸히 남아 있었을 뿐이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차마 믿기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굶어서 죽나. 전쟁통도 아니고 2019년 대한민국 서울에서다. 나는 이렇게 안전망이 허술한 사회에 살고 있었나, 정말 사람 옆에 사람이 없었나….

이들이 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렀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북한이탈주민 가정이라는 특수성이 더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15일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자료를 보면 북한이탈주민 40.3%가 가구소득 2000만원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실시한 ‘2018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로 미취학 자녀가 있는 가구 28%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응답자의 경우 가난해서 끼니를 굶어본 적 있다는 응답도 4.5%에 이르렀다.

탈북민 모자는 18개월간 건강보험료가 체납된 것은 물론 수개월간 단전·단수 상태에 있었지만 사회안전망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한 사회복지사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찾아가는 발굴 시스템을 가동하고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시스템적으로 부족한 면을 느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부모가정은 독거노인에 비해 어린아이가 있어 더 제도적으로 점검될 수 있고 당사자들도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요구해 그나마 덜 위험하다고 믿어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당황스럽다”고 했다.

소외된 약자들의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제도를 보완해온 것이 사실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등 이후 빅데이터를 통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이 구축되고 현장에서 위기가구를 적극 발굴하는 프로그램도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탈북민 모자의 죽음은 현재의 시스템이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시스템을 마련할 때 복지 서비스 제공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몸을 더 낮은 곳으로 낮춰 바라보고 더 작은 소리들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제도가 발전할지라도 점점 더 개인화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복지 시스템’에도 공들여야 한다.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탈북민 모자의 여섯 살 난 아이도 영화 속 유키처럼 분명 세상을 향해 도움의 마지막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김희연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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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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