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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편집국에서]지상의 한 칸

경향 신문 2020. 10. 30. 14:28

날씨가 쌀쌀해지면 그립고 설레는 것들이 있다. 깊은 밤 불을 끄고 찾아든 이불 속 따스함이 그렇다. 허리에서부터 전해진 그 포근함은 온몸을 조용히 적신다. 하루의 고단함과 우울도 그때면 사르르 녹아내린다. 해가 더할수록 이 계절이 되면 감각은 예민해지고 사소한 것들의 행복이 깊어진다.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 날이면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백석)일망정 ‘지상의 한 칸’이 그립다. 추위와 서러움은 문학과 오랜 끈으로 맺어져 있지만, 백석의 시만큼 마음에 스미는 경우도 없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지상의 한 칸은 그런 곳이다. 비록 혼자지만 사랑을 하고, 소주를 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피난처 같은 곳이다.

오늘날 ‘대도시 서울’에서 지상의 마지막 한 칸은 고시원이다. 해마다 50여명이 홀로 그곳에서 죽어간다. 실상 ‘고시원 고독사’는 월세가 비싼 서울만의 현상이다.

‘서울시 고시원 보고서-거처 상태 및 거주 가구실태조사’(경향신문 10월7일자 ‘2020 고시원 탐사기’)를 보면 전용면적 7㎡(2.1평) 미만 방은 57.7%로 절반을 넘었다. 말 그대로 ‘한 칸’이다. 그곳에선 무급가족종사자·무직자(44.7%), 임시·일용근로자(34.1%), 상용근로자(16.8%)들이 하루 1만원 이하꼴의 돈으로 고단한 몸을 쉰다. 50·60대 고령층 비율은 39.4%로 절반에 가까웠다. 공용 화장실의 변기는 9.5명이, 공용 샤워기는 8.7명이, 공용부엌의 냉장고는 18명이 평균적으로 함께 사용했다.

“최상위 계층 수가 1%에서 0.1%로, 그리고 0.001%로 점점 더 작아지는”(아미르 후사인 <센시언트 머신>) 세상에서 지상의 한 칸은 이제 신분의 표지처럼 ‘그’를 옥죈다. 김유담의 소설집 <탬버린>에는 이런 도시의 처절한 한 칸들이 등장한다. 때로 옥탑방이기도 하고, 벌집이나 다름없는 원룸 자취방이기도 하고, 월 28만원짜리 고시원이기도 하다.

‘월 28만원짜리 여성 전용 고시원’에 사는 인희는 40만원짜리 하숙방이 있는 남자친구 ‘나’에게 “그 차이만큼 누리고 가질 수 있는 게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단편 ‘가져도 되는’). 실상 둘의 차이는 ‘12만원’이 아니다. 고시원이라도 이어가려 때로 새벽 한두 시까지 ‘살인적 아르바이트’를 감내하는 인희와 ‘적은 돈이나마 고향에서 올라오는 용돈’에 의지할 수 있는 ‘나’의 차이다. 그래봐야 ‘서울 중산층 출신 아이들’ 눈엔 궁상스러운 시골학생들일 뿐인데. 서울의 고시원 중 월 30만원 미만 저가 고시원은 42.7%다. 7만명(추정) 넘는 이들이 인희처럼 안간힘을 쓰며 그곳을 버텨내고 있다.

삶의 기본적 조건을 충족시키는데, 가진 에너지의 대부분을 쏟아부어야 한다면, 도무지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지상의 한 칸은 누군가에겐, 어느 세대에겐 그런 곳이 되었다.

그래서 김유담 소설 속 인물들은 ‘분수’에 민감하다. 과거 분수는 ‘지키’는 것이었다. 스스로 어떤 한계를 짓는 것이기에 겸손함보다는 부정적인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에겐 분수는 ‘누리’는 것이다. 분수를 지키는 것조차 버겁기에 절실한 것이 되었다. 그들의 분수가 타인의 지키지 못한 분수로 인해 어그러질 때 그들은 절망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300년 전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에서 그 두려움을 보았다. “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범죄의 대부분은 불공평한 소유의 법칙이,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대상을 소수의 소유로 국한시킴으로써 인간 욕구를 제약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로마제국쇠망사>) 왠지 이 사회가 ‘종막’에 다다른 듯한 두려움을 느낀다면 과장일까. ‘18명(고시원의 냉장고를 공유하는 수)’과 ‘7.3채(상위 1% 다주택자의 보유 주택 수)’의 현기증 나는 모순을 보면 꼭 망상만은 아닐 것 같다.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지상의 한 칸은 희망이 미약하게라도 숨을 이어가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고시원 탐사기’ 속 2.5㎡짜리 한 칸의 그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 중”이라고 말한다. 그 미약한 희망에 온기를 더할 삶의 질에 대한 숙제가 우리 모두 앞에 있다. 비록 ‘헌 삿을 깐 한 칸’보다도 열악할망정,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희망의 피난처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김광호 기획에디터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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