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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반칙, 편법, 후안무치, 요지경, 도박판, 개싸움…. 21대 총선 공천 과정을 특징짓는 단어들은 험악하다. 물론 ‘진박 감별사’가 설치던 4년 전 총선 공천도 난장판이란 소리를 들었고, 그 앞선 총선도 시끄럽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희한한 선거가 있었을까 싶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현역 의원의 불출마, 중진 의원의 용퇴 선언이 혁신으로 얘기되기도 했지만 스쳐지나가는 일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그 중심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있다. 여야가 공직선거법을 주무르는 과정에서 누더기가 됐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장벽을 낮춰 국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나 거대 정당들은 허점을 공략했다. 비례대표 전담 위성정당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선거법 개정에 반대한 미래통합당이 비례정당 창당을 선언했을 때는 설마 했지만 눈앞의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거대 정당은 기득권의 일부라도 소수정당에 떼어주기는커녕, 한 석이라도 더 긁어모으기 위해 혈안이다. 기득권 챙기기에 관해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자들이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연비제 도입을 두고 으르렁댔다. 미래한국당이 가시화하자 “국민 투표권을 침해하고 정치를 장난으로 만드는 것”(이해찬 대표)이라던 민주당도 장난질에 가세했다. “(통합당의 꼼수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울 뿐”(이인영 원내대표)이라는 대리 사과는 비난으로 돌아왔다. 서로가 상대를 향해 꼼수라고 비난하고, 자신은 정당방위라고 강변하지만 결국엔 한배를 탄 셈이 됐다. 위성정당 문제에선 ‘적인 듯, 적 아닌’ 사이다. 의원 1명이라도 더 제명시켜 위성정당에 보내려는 꿔주기 경쟁은 비례후보 등록 직전까지 이어질 참이다. 유권자들은 원내 1당인 민주당과 2당인 통합당 이름이 사라진 정당투표 용지를 받게 된다.

민주당 주변에는 두 개의 위성정당이 돌고 있다. 민주당의 공식 ‘형제정당’은 더불어시민당이다. 민주당은 범진보·개혁 세력의 비례연합정당을 운운하더니 그냥 민주당 색깔로 만들어버렸다. 소수정당을 배려한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는 게 나았다.

난데없이 열린민주당이 끼어들면서 여권의 구도가 복잡해졌다. ‘친문재인·친조국’ 선명성을 앞세운 이들이 선거에 뛰어들면 적어도 5석은 얻을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열린민주당 지지율이 오르는 만큼 더불어시민당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민주당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더불어시민당의 당선권 후순위에 배치해놨던 민주당 영입인사들의 당선에 먹구름이 끼었다. 열린민주당은 ‘우리는 한 가족’이라며 총선 끝나고 뭉치자는데, 민주당은 ‘통합은 없다’고 자른다. 이해찬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참칭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도 총선 이후엔 최소한 연합은 해야 한다니, 관계 설정이 미묘하다.

거대 정당 사이에 낀 소수정당들은 씁쓸하다. 선거전이 여러 정당들의 다양성 경쟁이 아니라 양강 구도로 흘러갈수록, 위성정당들의 위력이 커질수록 소수정당의 존재감은 작아질 수 있다. 범여권 비례정당에 불참한 정의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도 그럴 가능성을 보여준다. 선거판이 기형적으로 짜이면서 소수정당엔 국회 진입 장벽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거대 정당들이 감히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원래 지지층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터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니, 뻔히 보이는 반칙에도 역풍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유권자를 얕잡아 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4년차에 치러지는 총선인 만큼 정부의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성격이 강하지만, 정책과 비전이 이렇게 사라져도 되는 것일까. 역대 최악이라는 20대 국회, 그 바통을 넘겨받을 21대 국회에 어떤 기대를 가지라는 것인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에 비유된다. 18세 눈에도 그렇게 비칠까.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지면서 2002년 4월16일 이전에 태어난 고등학교 3학년, 대략 14만명이 처음 투표권을 갖게 됐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개학이 늦어져 마음이 어수선할 터인데 ‘선거라는 게 이런 거였어’라는 인식을 갖게 되기 십상이다. 거대 양당이 기득권 확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식이라면 학생들에게 성적지상주의를 요구하는 것과 다른 게 뭔가. 이런 식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러지는 총선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총선의 ‘뉴 노멀’이 되어선 안된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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