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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폭우에 태풍까지 빈발해 밭작물은 망해먹었다. 상추와 고추, 추자 돌림은 쬐끔 따다 먹었으나 토마토를 생각하면 ‘달구똥’만 한 눈물이 쏟아져분당. 옆밭의 할매가 ‘불구녕 지르듯’ 내게 그랬다. “비 없으라고 밤 새두룩 기도를 해싸도 소양 없재라? 하늘이 맴을 묵으믄 그러코롬 되부러라잉.” 귀엽게 꼬는 소리를 하신다. 할매는 발목까지 덮는 스란치마를 입고, 모기에 뜯기면서 밭을 서성이는 허술한 차림의 나를 향해 혀를 끌끌. 나는 토마토 넝쿨을 모두 걷어내고 포도 묘목을 구해다가 줄 맞춰 심었다. 서울에서 은행 임원인 고향 후배가 있는데, 입만 열면 고향에 돌아가 포도밭을 가꿔보겠단다. 그 친구 꿈이 이뤄지기 전에 맛이라도 보라고 시범 조로 한번. 머루 포도를 조르라니 심었는데, 청포도도 심어볼까. 비를 머금은 매지구름이 보이자 이때다 하고 갖다 심었다. 근처에 포도밭이 흔해 시들방귀나 뀌고 살았는데 이젠 도담도담 자라날 것을 생각하니 맘이 당기고 조바심까지 불었다.

사막의 수도사가 있었다. 세간 인연을 모두 끊고 본때배기로 예배를 바쳤다. 신이 보시기에 아주 열심이어서 찾아가 격려해주기로 했다. “이보시오. 나는 그대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신이라오.” 한데 수도사가 반가워하기는커녕 마뜩잖은 표정이었다. “신이고 뭐시고 썩 꺼지시오. 예배 방해하지 말고 얼른 꺼지란 말이오.”

밭작물의 성패가 아니라 몸을 부리는 노동으로 깨어 살고, 대자연과 교감을 나누는 신비에 마음을 둘 일이다. 조바심도 애착이라 물 한번 그득히 주고 밭에 가지 않았다. 하늘이 소낙비를 푼푼하게 내려주더니 조석간 가을바람조차 감사해라. 첫 번 포도는 포도주를 담아 동무들과 나눠 마실 계획이다. 그러기도 전에 홀짝홀짝 다 마셔버리고 방언기도를 하게 될지도 몰라. 나는 ‘전라도 방언’을 웬만한 목사들보다는 잘 구사한다. 방언 예언, 좔좔좔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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