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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성별 권력 관계(젠더)는 오랜 역사 동안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어 왔다.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를 둘러싼 판단은 개인과 사회 공동체가 모두 혼란을 겪는다. 남성 중심적 사고는 공기와 같아서, 인종 문제처럼 피해와 가해 여부가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여성 조지 플라이드’는 매일 발생하지만, 보고되지 않는다.

이에 대응하는 여성주의 세력도 소위 ‘성인지 감수성(여성주의 의식)’과 여성학적 의견이 일치를 보는 것도 아니다. 여성주의자 사이의 이견이 활발한 논쟁으로 발전할수록, 남성 개인도 사회도 성숙해지지만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나는 2005년 <페미니즘의 도전>이란 책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동어 반복일 뿐 아니라 여성에게 불리한 논리라고 주장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 논리는 더 힘을 얻는 듯하다. 어떤 여성은 이 말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종의 인식론적 ‘가산점’으로서, 여성의 입장을 더 고려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반면, 남성 사회는 “여성‘주의’도 이상한데, ‘여성=피해자’에 ‘피해자 중심주의’라니, 말도 안 된다”고 반발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옹호하는 여성과 반대하는 남성의 공통점은 논의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데 있다.

사회적 약자의 피해와 고통이 저절로 규명된다면 이미 유토피아고, 사회운동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 피해가 자명한 사실로 인정되고, 가해자가 ‘내가 받은 상처 이상으로’ 처벌받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피해·가해 여부는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가 결정한다. 문제는 성 중립적 사회는 없다는 것이다.

피해는 객관이 아니라 경합적 가치다. 즉 피해당했다고 곧바로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모두가 피해자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피해자는 투쟁으로 ‘획득되는 지위’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피해자의 저항은 평생에 걸친 과정일 수도 있고, 생전에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해자가 피해자라고 나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4·3도, 5·18도 그러했다. 일상적으론 여성이 겪는 성폭력이 대표적이다.

성폭력 범죄는 범인이 아는 사람인 데다 범행 장소도 가해자나 피해자의 집인 경우가 70%가 넘는다. 증인이 없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검경은 피해자에게 피해 증명을 떠맡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성 범죄는 피해자나 여성단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피해자가 사법기관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취조받는 현실도 변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구호가 피해자 중심주의다. 사기나 절도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당연하기 때문이다. 어느 범죄나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자 말부터 듣는 게 상식이다.

왜 여성운동 스스로 상식을 부정하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여성의 말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역설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준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성에게 불리할 뿐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개념이다. 피해 여성의 말을 포함, 인간의 모든 발화는 상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에는 규범적 피해자의 이미지가 전제되어 있다.

범인의 성별이 압도적으로 남성이라는 사실 외에는, 성폭력도 다른 범죄처럼 사건마다 성격이 크게 다르다. 진상 규명은 피해 여성의 말을 무조건 옹호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평소 사회가 성폭력의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존중해왔는가에 달려 있다.

나의 경험이 “피해였다”는 자각과 피해 의식은 다르다. 피해는 상황이다. 정체성이 아니다. 피해자 정체성은 더 위험하다. 피해자라는 위치가 곧 피해의 근거가 된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이토록 만연한가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구체적 정책이 필요할 뿐이다. 집단적 억압이든 개인적 사건이든 가해자는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고 피해자는 성장하기 어렵다(나부터 그렇다). 이것이 식민주의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를 존중하는 언설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의 곤경과 그들을 위한 언어가 얼마나 빈곤한지 보여줄 뿐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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