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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있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커다란 분기점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날, 잠든 아이의 침대 맡에 앉아 부쩍 자란 손과 발을 가만가만 만져보며, 순간 울컥했다. 그 조그맣던 아이가 이만큼 커서 벌써 학교를 갈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고, 이제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출발점에 선 것이 대견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섰다. 아직 어려 보이기만 하는 아이가 낯선 곳에서 앞가림은 잘할 수 있을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잘 어우러질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 사회 특유의 경쟁적 학습 시스템하에서 크게 방황하지 않을 수 있을지. 대견함과 불안함의 조합은 불면증을 부른다. 결국 그날은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자 현실적 문제가 닥쳐왔다. 유치원의 하교 시간은 오후 3시, 종일반 신청을 하면 오후7시까지였다. 워킹맘인 내게는 힘들지만, 아슬아슬하게 생활을 꾸려갈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는 달랐다. 1학년의 하교는 낮 12시30분. 돌봄 교실이 있었지만 1, 2학년을 통틀어 한 반만 운영하기에 정원이 적어 신청이 어려운 데다가 운영 시간도 오후 5시까지였다.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는 야간돌봄교실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건 거의 도시전설에 가까운 먼 이야기였다. 결국 이 공백을 메우는 건 사교육이었다. 인솔교사가 차량으로 데리러 오고, 수업이 끝나도 학원에 좀 더 남아 놀 수 있는 태권도장이 제격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완전히 공백을 메우기 어렵기에, 같은 건물 안에 있어서 아이가 혼자서도 오갈 수 있는 피아노나 미술 학원을 하나씩 더 넣는 경우도 많았다. 아이가 수업을 좋아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유치원 시기의 학원비는 그나마 연말 정산에서 공제 처리라도 되는데, 방과후 학원 수업료는 그런 작은 혜택조차 없이 고스란히 부모의 부담이 되었고, 낯선 환경과 늘어난 사교육에 지친 아이는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결국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기는 부모들이 육아휴직을 가장 많이 고민하는 두 번째 시기가 된다.

난자는 배란 후 24시간 내 정자를 만나야만 수정란이 될 수 있으며, 수정란은 수정 후 2주 즈음이면 자궁에 착상해야 한다. 6주경이 되면 작은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하고, 10주가 되면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를 갖춘 작은 인간의 모습이 얼추 만들어진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이 시기의 태아는 자궁 밖에서 절대로 생존할 수 없다. 의학계에서는 태아가 엄마 몸 밖에서 살 수 있는 최소 생존 가능 시기(age of viability)를 임신 22주, 몸무게 500g으로 보고 있다. 또한 최소 생존 가능 시기를 넘긴 아기라 할지라도 만삭(40주)을 채우고 태어난 아기에 비해 사망률과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에 세심한 주의와 적극적인 처치가 필요하다. 아이를 일찍 만나고 싶다고, 혹은 태어날 시기를 조절하고 싶다고 아이를 일찍 낳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탄생 후 인간의 발달 과정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발달은 대개 중앙분포의 평균값을 따른다. 빠른 아이는 7개월이면 첫걸음을 떼고, 느린 아이는 18개월이 되어야 처음으로 일어서지만, 대개는 11~14개월이면 걸음마를 시작한다. 말하는 시기도, 배변 조절이 가능해지는 시기도, 사진을 찍을 때 손가락을 접어 V자를 만들 수 있는 시기도 대개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이 시기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한 달 전, 일주일 전, 심지어 어제까지도 못하던 동작이나 행동을 오늘은 할 수 있으며, 며칠 후면 매우 능숙해진다. 아이에게 1년은 어른들의 수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초등 입학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것을 정부에서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지금도 원한다면 누구나 만 5세에 입학할 수 있는 조기입학 제도가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부모들의 비율이 극히 낮으며,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부모들이 취학 유예를 선택하고 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일찍 학교에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아이들을 일찍 공교육의 영역으로 포함시켜 교육 격차를 줄이려면 초등 입학연령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 교육을 공교육에 포함시키는 것이 더 좋고, 발달이 빨라져 초등 6학년을 초등 교육에서 다루기 어렵다면, 초등 고학년을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이나 중·고등 학제개편도 있을 수 있다. 아이의 발달 상태나 우리나라의 교육 상황, 부모와 학생의 요구 등이 포함되지 않는 만 5세 입학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진정으로 묻고 싶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연재 |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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