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 민철(가명)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욕설까지 섞어서 하는 틱 장애가 심해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여러 해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고 있지만 차도가 없고, 집에 있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대안학교도 몇 군데 면접을 봤으나 잘 안되었다고. 아이 교육 문제부터 주거, 병원 치료까지…. 울먹이며 쏟아놓는 이야기들은 한 시간가량의 전화 통화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번 만나자 했더니 멀리서 민철이를 데리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긴 이야기를 들은 후, 아이를 보낼 만한 학교가 있을지 묻는 엄마에게 나는 한 농촌마을을 권했다. 사실 아이보다 엄마를 생각해서 한 권유였다. 엄마의 저 다급하고 절박한 마음이 풀리고 여유를 찾아야, 아이의 어려움도 좀 나아질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안전하게 머물 곳이 있고, 부모 말고도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줄 이웃들이 있는 느슨한 공동체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내 얘기를 들은 바로 그다음 날부터 무작정 그 마을을 찾아가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난다는 소식이 지인들을 통해 전해졌다. 얼마 후 민철 엄마는 긴 문자를 보내왔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이상하게 이곳에선 그냥 살아질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숨통이 트인다’ ‘가슴이 뻥 뚫린 거 같다’는 표현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아이는 그대로지만 달라진 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그로 인해 민철 엄마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이와 엄마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학교’가 아니라 ‘알로마더’였다. C J 슈나이더가 쓴 <엄마는 누가 돌보지?>에서는 엄마 외에도 아이의 양육에 중요한 역할을 나누어 하는 할머니, 고모, 이모, 언니, 삼촌 등 알로마더(allomother), 알로페어런츠(alloparents)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교사’, ‘부모’라는 이름을 달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그 가족의 어려움에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돕고자 하는 ‘확대가족’의 마음가짐이 인류를 진화시켜왔다. 

학기 초를 맞아 또다시 돌봄 전쟁이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올해 돌봄의 틈새를 메우는 우리동네키움센터를 94곳에 설치하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 교육혁신지구 정책도 가정과 학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교육과 돌봄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사회적 제도’ 이전의 유대감과 연결감이 필요하다. 민철 엄마에게서 보듯, 전문적인 ‘상담가’보다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웃’이 심리적으로 더 빠른 치료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난주, 공간민들레 청소년 열두 명이 입학식을 했다. 그들은 일 년 동안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자신들의 고민과 계획을 들려주었다. 부모, 교사, 강사, 그들을 응원하는 어른들이 모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질문하고, 조언하고, 공감했다. 입학식은 세 시간 반을 훌쩍 넘겨 끝이 났다. 

여러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올해 내 역할을 가늠해보았다. 손 내밀 때 언제든 잡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들의 성장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응원하는 ‘알로마더’로서의 역할로 충분하지 싶다. 어쩌면 그것이 교육과 돌봄을 회복하는 ‘교육적 사회 만들기’의 시작이기도 할 것이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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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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