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생님은 정말 수업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시와 소설로 아이들과 만나는 교실은 그분에게는 삶의 가장 소중하고 기쁜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쓴 글을 눈물 콧물 찍으며 저녁 늦도록 읽으셨고 아이들이 만든 손바닥 시집을 줄에 매달아 복도 벽에 걸어 놓으셨는데,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의 꿈과 사랑이 형형색색으로 펄럭거렸다.

그런데 새로 가신 학교에서는 수업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앉으라고 해도 계속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일일이 붙잡아 손에 책을 쥐여주고 나면 10여분이 지나갔고,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는 아이들을 다시 앉히다보면 수업 종이 쳤다. 칭찬과 긍정으로 지도하면 학부모들은 담임이 애들을 혼내지 않아서 우리 아이가 피해를 본다며 항의했고, 반대로 아이를 나무라면 왜 우리 아이만 미워하냐며 담임교체까지 요구하는 반도 있었다. 많은 교사들이 이 선생님처럼 상처투성이 심장이 되어 방학에 들어갔다.

어쩌다 공교육은 이렇게 학생과 학부모에게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되어버렸을까? 교육이란 아이들이 자유와 책임이라는 자기 영혼의 두 날개를 펴서 세상이라는 하늘을 높이 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돕는 일이다. 학교는 이를 위해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서로의 삶을 함께 실현할 수 있는지 탐구하는 곳이다. 그래서 교실은 수많은 자유와 책임이 공존하는 존엄하고 소중한 공간이며 교사는 그러한 공적 역할과 의무를 지닌 사람이다.

그런데 이 엄중한 교실에서 교사에게 욕을 하면서 수업 진행을 어렵게 하는 학생이 있어도 그가 동의하지 않는 한 학생은 교실에서 쫓겨나지 않는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의 수업권을 존중하느라 더 많은 학생들의 수업권과 교권은 지속적으로 침해를 받는다. 방과후에 지도하려 해도 학부모가 “우리 아이 학원에 가야 된다”고 하면 학교는 더 이상 학생들을 붙잡아두지 못한다. 교육이라는 공적인 역할을 해야 할 학교에서 공적인 힘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교원지위 향상과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개정되었다.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을 강제 전학 보냄으로써 교원의 지위가 향상된다는 것은 교사의 정체성에 좌절과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없으며 학생들은 학교를 못 오게 하는 것밖에 가르쳐줄 게 없는 학교의 무능함을 더욱 비웃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학교의 교육적 역량 강화이다. 수업과 교권 침해야말로 학생들에게 자유와 책임,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깊이 가르칠 수 있는 중요한 교육적 기회이며 의무이다. 자유와 책임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서로를 통해서만 더욱 진실되고 깊어진다. 따라서 모든 교육정책은 교사와 학생들의 양손에 자유와 책임을 더 많이 쥐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교사에게는 책임만, 학생에게는 자유만 주어진다면 자유와 책임 모두 상처를 입고 제 역할을 잃게 된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되 다수의 수업권을 침해할 경우엔 교실에서 분리해 깊이 있는 교육을 통해 책임을 배우고 학생의 학습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학부모들의 참여와 민원에 대해서도 교사의 교육활동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절차와 제도를 두어 보호해야 한다. 이처럼 교육공간을 존중하는 제도가 마련되고 학교가 더욱 적극적으로 교육의 공적 역할을 수행할 때 공교육과 교원의 지위는 저절로 향상될 수 있다.

<조춘애 |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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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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