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구조기술사 박동훈은 삶이 고달픈 이지안에게 말한다. 건물을 지을 때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설계한다고. 인생도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틸 수 있다고. 

내력이란 물체가 외부 힘의 작용에 저항하여 원형을 지키려는 힘을 의미한다. 일본이 일제 징용 배상 판결에 도리어 경제보복을 하는 것이 외력이라고 한다면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진정한 사과를 받을 때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내력이다. 우리 역사는 부정선거에 맞서 4·19혁명으로 항거했고 6월 민주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으며, 국정농단 사태 앞에서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하며 내력을 증명해왔다. 그러나 반복되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그만큼 토대가 허약함을 방증하기도 한다. 김누리 교수는 이를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보며 자아의 문제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보면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자아는 독립적이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다. 파머는 그러한 자아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의 역동을 다루는 기회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그 결정적 장소가 교실이라고 보았다. 

교사는 ‘두려움은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까?’ ‘죽을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인생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 질문을 통해 학생의 내면 탐구를 자유롭게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보다 커다란 실재에 맞닿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지극히 작은 개인이 큰 이야기와 연결될 때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마음의 습관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국어 수업에서 아이들과 같이 고른 책, 티에리 드되의 <야쿠바와 사자>를 읽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서는 소년이 전사로 인정받으려면 홀로 사자와 맞서 싸워야 한다. 야쿠바는 힘들게 헤매다 드디어 사자를 대면하지만 사자는 이미 피 흘리고 굶주려 죽기 직전인 상태다. 이대로 사자를 찔러 전사로 인정받을 것인가, 상처 입은 사자를 구해주고 겁쟁이로 남을 것인가. 밤새 고민한 소년은 사자를 살려주고 마을로 돌아온다. 전사가 된 다른 친구들은 사냥을 떠나지만 야쿠바는 마을 외딴곳에 남아 가축을 돌보는 허드렛일을 맡게 된다. 

책을 덮은 후 아이들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약한 사자를 죽이고 전사가 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인가? 자신에게 당당한 것과 타인의 평가 중 무엇이 중요한가? 스스로 한 결정을 따르기 위해 다수가 바라는 길을 가지 않을 용기가 있는가? 함께 읽은 책은 공동의 경험이 되었고 우리가 만든 질문은 실존의 문제를 지닌 큰 이야기가 되었다. 아이들은 아프리카 어느 초원을 배경으로 둥글게 모여앉은 스무명의 야쿠바들이 되어 스스로 답을 찾아갔다. 우리는 친구가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쳐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묵묵히 곁에서 들었다. 서로 달라도 평화로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자신이 주체가 되어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랐다. 

야쿠바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고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비슷한 일을 만날 것이다. 고독하게 내면을 탐구하되 서로 곁을 지켜주는 시간이 학교에서 켜켜이 쌓여가길, 그래서 장차 사회에 나갔을 때 타인의 평판에 휘둘리지 않길,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는 내력을 가진 사람이 되길 이 작은 교실에서 꿈꿔 본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