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하고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한창 이야기꽃을 피울 무렵 한 친구가 최근 있었던 어려운 일을 토로했다. 8시50분 등교인 학교인데 학생이 9시 지나서 등교한 적이 있어 기록했던 것을 학부모가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미리 문자를 보내지 않았냐며 사정이 있다고 했었는데 왜 생활통지표에 표시했냐는 항의성 전화였다. 

일부 교사들은 방학한 뒤 며칠은 불안해한다. 방학식 날 학생에게 배부한 생활통지표에 대해 불만을 가진 학부모가 연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학생에 대한 ‘행동발달 및 특성’을 읽고 ‘왜 이렇게 부정적인 표현을 써줬냐’ ‘이런 표현은 빼달라’ 등…. 그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얼마나 신뢰를 주지 못했으면 그랬겠냐는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교사의 평가권을 인정하지 않고 공교육을 불신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성적 처리 기간이 시작되면 교사들 사이에 이런 노하우가 떠돈다. 행동발달 및 특성을 기술할 때 학생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직접적 표현은 피하고 행간에 의미를 담으라는 어려운 주문 말이다. 생활통지표를 읽고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교무실로 민원 전화가 오니까 조심하라는 이유다. 그런 당신은 무엇을 가르쳤길래? 당신은 과연 잘 가르쳤느냐? 비난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을 현장에 선 교사들은 오롯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부서지고 깨어진 신뢰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민원인과 피민원인의 지경에 이르기 전, 교사와 학부모가 가슴을 마주하며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초등학교는 보통 3월에 학부모 대상 공개수업을 한다. 그날따라 비도 오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공개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약속한 대로 아이들이 교실 가운데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수업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서클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토킹 피스를 받은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놓으니 창밖에 빗소리도 잦아드는 듯했다. 교실 뒤편에서 참관하던 학부모들의 굉장한 집중력이 서클의 한가운데에 와닿자 소심한 아이의 떨리는 작은 목소리도 똑똑히 들렸다. 아이들을 보내고 곧이어 학부모 총회가 이어졌다. 둥글게 앉아 먼저 ‘공감’과 ‘경청’의 의미를 나눈 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를 함께 읽었다. 시를 매개로 한 명씩 돌아가며 시에서 와닿는 구절을 소개하고 떠오르는 자기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학부모가 겪고 있는 양육의 고달픔, 교사가 갖는 학교 교육의 고충을 평가나 조언, 판단과 비난 없이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총회를 마칠 때쯤 교사와 학부모 모두 눈물을 흘렸고 서로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 다음주에 이어진 학부모 상담 기간에 찾아온 한 학부모님은 이날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큰아이도 학교에 보내왔고 둘째 아이까지 매년 참여했기에 뻔할 것이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왔던 것을 반성했어요. 기대 없이 왔는데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교실이 그토록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에 감동했고 앞으로 아이들이 편안하게 학교에서 잘 지낼 수 있으리란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정현종 <방문객>의 일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위지영 | 서울 신남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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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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