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 뛰면 안된다고 했지. 요즘은 더 조용히 있어야 해.”

오늘도 사자후 같은 아내의 잔소리가 집 안을 뒤흔든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집사람 목소리가 저렇게 큰 줄 몰랐다. 예전에는 한없이 애교가 넘쳤는데 두 아들의 엄마가 된 지금은 논산훈련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목청이 커졌다. 딸만 있는 집에서 곱게 자란 사람이 아들 둘을 키우려니 얼마나 힘들까. 아이들도 수시로 들려오는 엄마의 잔소리에 입이 잔뜩 나왔다. 기운 넘치는 나이에 집 안에 갇혀 있으려니 얼마나 좀이 쑤실까. 그래서 잠시만 방심해도 소란을 피우고 이를 놓칠세라 엄마의 잔소리가 날아든다. 코로나19로 집 안에 갇힌 우리 아이들 모습이다.

아파트 생활이 대중화되며 층간소음 피해를 토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아이들이 집에 있는 요즘은 층간소음이 절정이다. 우리 윗집에도 유치원생이 사는데 어찌나 기운차게 뛰는지 하루 종일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참다못해 윗집에 양해를 구했으나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군다며 면박만 받았다. 작은 아이가 머리가 울린다며 우는 바람에 큰아이가 뛰쳐 올라간 적도 있지만, 여전히 윗집 아이는 매트도 안 깔린 바닥을 우사인 볼트처럼 질주한다. 윗집 아빠가 퇴근하면 발망치 소리가 몇 배로 커진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아이와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사 가야 하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빠, 우리 아랫집도 시끄럽다고 할까요?”

“당연하지. 아랫집에는 고등학생 누나도 있잖아.”

“아! 그럼, 더 조용히 해야겠네요.”

공자님 말씀에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우리 집 아이들은 배려를 배우고 있다.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고, 남을 불편하게 했다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사과하고 멈춰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걸 스스로 느낀 덕분인지 우리 집 아이가 아랫집 식구들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사과는 나의 몫이었는데 아이 스스로 사과하는 모습에 대견한 기분이 든다. 체험보다 효과적인 교육이 없다더니 윗집 발망치 소리가 우리 아이에게 좋은 교육이 된 것이다. 이런 걸 새옹지마라고 해야 할까? 내 아이가 딱 한 가지만 배워야 한다면 그것이 예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니까.

창밖의 나무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아이들이 뛰어놀기 딱 좋은 시기가 왔구나. 코로나19에 빼앗긴 운동장에도 곧 봄이 오겠지. 그때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도록 축구공과 자전거에 바람을 채워놔야겠다.

<강명규 스터디홀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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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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