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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전화를 받았다. 부모의 고민은 중3인 아이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었다. 학습도 느리고, 말이 어눌해 또래 관계도 쉽지 않다고 했다. 아이에게 맞는 대안학교를 콕 찍어주길 원했다. 대학을 가야 하니 이왕이면 학력이 인정되는 학교면 좋겠다고. 이 상태에서 입시라니, 아이가 받을 스트레스가 느껴졌다. 지금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인가받은 고등학교’가 아니라 ‘속도전을 펼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아이의 행동을 ‘문제’로 보는 거다. 어떤 현상을 ‘특성’으로 보는 것과 ‘문제’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문제’라고 여기는 순간 교육은 치료이자 계도가 되며, 아이는 ‘당장 뜯어고쳐야 할 하자품’이 된다. 하자품을 바라보는 부모나 교사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빠름’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느림’은 심각한 결함이다. 상품 배송이 느려도, 식당에서 식사가 늦게 나와도 문제고, 특히 아이의 발달이 늦으면 아주 큰 문제다. 신생아 때부터 병원에서 내주는 영·유아 발달카드에는 해당 월령대에 성취해야 할 기준이 촘촘히 적혀 있다. 부모들은 키, 몸무게, 심지어는 머리둘레까지 평균보다 앞선다는 것을 자랑스레 여긴다. 뒤처지는 것은 너무 큰 두려움이어서 또래보다 말이 느리다는 이유로 언어치료를 받는 아기들도 있다.

국내에 ‘느린 학습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80만명이다. ‘경계선 지능’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들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발달장애 등 여러 특성을 동시에 지니기도 한다. 일반학급에서 지내기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고, 장애 진단을 받기 힘들어 특수교육에서도 배제되고 있는 이들을 지원하는 일이 시급하지만, ‘느리다는 것’만으로 문제가 되는 문화는 분명 바뀌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입양원에서 아기들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신생아부터 생후 12개월까지 비슷한 월령대의 아기들 열댓 명을 동시에 보살피며 ‘사람은 다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확연하게 느낀다. 같은 7개월인데 위아래로 이가 여덟 개나 난 아기도 있고, 아랫니 하나가 날까 말까 한 아기도 있다. 생후 10개월에 자박자박 걷는 아기가 있는가 하면, 기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서 별명이 ‘돌부처’인 아기도 있다.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어른들끼리 걱정하는 사이, 돌부처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 발을 떼기 시작했다. 배밀이를 하다가 기다가 걷는 일반적인 과정을 건너뛰고, 제때에 자기 방식대로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선 것이다.

아기들을 보면서, 모두가 같은 곳에 같은 시간에 도착하길 바라는 것처럼 불가능한 꿈이 있을까 싶다. 누군가는 목적지에 느리게 가닿기도 하고 누군가는 아예 다른 목적지를 향하기도 한다. 인생은 속도전이라니, 슬픈 말이다. 아이들이 비교당하거나 쫓기거나 도태되지 않고 자기 속도대로 자라날 수 있다면 삶을 배워 나가는 일이 한결 기쁠 것이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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