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시작하기 전 ‘어제 나에게 조금이라도 좋았던 일’ 한 가지를 떠올려보는 시간을 갖곤 한다. 교사의 질문에 아이들은 서로 쳐다볼 뿐 아무 말이 없다. “선생님이 먼저 말해볼게. 어젯밤에 자는데 갑자기 거실에서 큰 소리가 나서 잠이 깼어. 시간을 보니 한시 반이었어. 잠이 다시 안 올 것 같아서 화를 내고 들어와 누웠는데 5분도 안되어 다시 잠이 들었어. 아침까지 푹 잘 잔 거야.” 선생님이 좋았다는 건지, 나빴다는 건지 아이들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선생님, 그게 좋았던 일이었어요?” “그럼~ 잠을 못 잘까봐 걱정했는데 정말 잘 잤거든. 너희들도 조금이라도 좋았던 어떤 일이 있었어?” 하고 물어도 여전히 아이들은 주저한다.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며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 선생님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준다면 모두에게 기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니, 한 학생이 목소리를 낸다. “라면을 먹었는데 아줌마가 만두 2개를 넣어주었어요.” 아이들이 같이 웃는다.

“와~ 저 정도 좋은 일이라면 나에게도 있었어요, 하는 사람 있니?” 하고 물으니 또 다른 학생이 목소리를 낸다. “어제 학원에 안 갔어요.” 아이들의 말은 짧지만 그 속에는 그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담겨 있다. “와우, 정말 좋았겠다. 어떤 점이 좋았어?” 하고 더 물어주니 “잠을 푹 자서 안 피곤해요”라는 말도 해준다. 이제 학생들은 조금씩 자신에게도 고맙고 좋았던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무섭고 떨렸는데 처음으로 헌혈을 해봤다는 얘기, 가족들이 밥을 각자 먹을 때가 많은데 어제는 가족이 저녁을 같이 먹었다는 얘기, 어릴 때부터 안고 자던 낡은 인형하고 거의 똑같은 인형을 어제 드디어 인터넷에서 찾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교실은 조금씩 따뜻하고 풍성해진다.

이 짧은 활동에는 교실의 배움에 관해 탐구해볼 만한 여러 요소가 담겨 있다. 어른들은 수시로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지 말하게 되는데 의무나 금지가 많아질수록 아이들의 자아는 쉽게 위축되고 상처받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는 고함을 치며 떠들다가도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정답이 아니면 그리 환영하지 않는 선생님, 조금만 실수해도 웃거나 놀리는 친구들, 아이들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교실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있었던 조금이라도 고맙고 좋았던 일’이라는 주제는 우리가 의무와 금기라는 긴장과 두려움의 에너지에서 벗어나 기쁨의 에너지로 향하도록 초대해준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다. 기쁨이 서로에게 퍼지면서 타인과 외부세계에 대해 닫혀 있던 우리의 의식이 점점 열리게 되고 이렇게 자아가 개방된 상태에서 아이들은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이제 누군가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동시에 자기 존재를 만나게 되고, 세상에 대한 인식은 더욱 넓어진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아이들은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자신을 아는 것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두려움과 위협의 요소를 없애고 서로 믿고 존중하며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교실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릴케의 말처럼 지금 당장은 그 답을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사랑하게 된다면 날마다 그 답은 조금씩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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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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