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예멘 난민들에 대한 한국인의 여론은 수용과 거부로 나뉘어 있다. 젊은층의 경우 거부 의사가 훨씬 많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반대 비율이 낮지 않았으며, 반대 근거는 아랍인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압도적이었다.

2018학년도 수능에서 제2외국어 선택 학생 가운데 71.42%, 응시생 수로는 6만6304명이 아랍어 시험을 봤다. 압도적인 쏠림 현상이다. 10년 정도 지났으니 어림잡아 50만명 이상이 아랍어를 공부했을 것이다. 수능 등급을 받기 쉽다는 불순한 동기에도 아랍세계를 언어로 만나는 이들이 늘었다는 부수적 기대 이익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랍과 이슬람에 대한 혐오는 굳건하다.

아랍, 혹은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영화와 뉴스, 종교 등을 통해 오랜 기간 확대 재생산되었다. 이러한 관념은 실제 경험이 없는 가상의 세계와의 만남으로 구성된다. CNN의 카메라 앵글에 비친 총을 들고 다니는 아랍인 병사들이나 미국 액션영화에서 알지 못할 말을 떠들다 백인 주인공의 총에 맞고 죽어가는 아랍계 테러리스트들 모두 우리가 실제 만나거나 대화하지 못한 존재들이다. 얼마 전 영문학을 전공한 교수가 여성 차별을 근거로 예멘 난민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글까지 썼는데, 그분 역시 논거가 정밀하지 못한 점으로 미뤄 가상의 아랍세계를 탐험한 것으로 보였다. 가상의 오염된 세계를 이해하는 창으로 언어는 유용한 도구인 만큼 학생들이 아랍어를 선택하기 시작했을 때, 반가웠다. 그러나 아랍어를 공부함에도 아랍인들은 수용 불가라는 감정적 혐오가 지배한다면 외국어 교육의 이상은 현실 어디에서 존재하는가. 아랍어는 학생 일부가 공부한다고 쳐도 초등학생 때부터 배워온 인류 평등, 다문화 시대의 개방성은 어디로 갔는가. 아랍인들은 피가 문제이니 절대 안된다는 사람들 역시 시험 문제에서 특정 지역을 혐오하라는 주장에 긍정 표시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 지식들은 학생들에게 체화되지 못한 채 고교 졸업과 함께 망각 속으로 휘발된 것이다.

구한말에서 한국전쟁 시기까지 수많은 우리 동족이 해외로 나가야 했고, 해당 국가의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고통을 받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제 스파이 혐의로 하룻밤에 만주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카레이스키들이다. 스탈린에게 만주의 고려인들은 소련을 위협하는, 지금 제주 땅에 온 난민과 같았다. 일본이나 미국으로 간 동포들 역시 현지 문화와의 갈등 속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원년의 풋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속 마을에 남은 조선인과 일본인들의 처절한 생존 갈등을 안타깝게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이 없었다면, 한인학교나 한인방송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197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의 바탕에 중동 건설 붐이 있었고, 지금도 많은 기업이 현지에서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랍=타락의 제국’이라는 주술 언어가 젊은 세대를 홀린 현실은 아랍어 선택 6만4000명이라는 통계와 기묘한 이중 나선을 그린다. 미디어에 의한 가상체험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학교 교육은 마술과 싸울 실천적 태도를 부여하는 데 실패했다. 다문화 시대의 이상은 휴지 조각이 됐다. 예멘 난민에 대한 젊은층의 혐오는 결과와 암기에 매몰된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안타까운 단면이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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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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