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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복고풍을 뜻하는 레트로가 유행이라더니 졸업식도 레트로인가? 얼마 전 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경험한 눈물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호명되고 교장선생님에게서 졸업장을 받고나서 담임선생님에게 안기거나 절하며 많은 아이들이 눈물을 지었다. 그걸 지켜보는 학부모님과 선생님들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지는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특히 선생님과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이던 아이들이 더 많이 울었다. “그렇게 울 거면 그때 말 좀 잘 듣지”라고 옆에서 볼멘소리 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그래서 애들이고, 그래서 선생과 부모 자리가 필요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교실 붕괴’니 ‘공교육의 위기’ 같은 이런 말들이 일상화되는 속에서 그동안 눈물 한 방울 없는 짧고 형식적인 졸업식을 봐오다 ‘이런 졸업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단상 아래 한 줄로 서서 내려오는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주기 위해 기다리던 선생님들이 주고받는 말에서 답을 찾았다. 아이들 명단이 불릴 때마다 한 명 한 명에 대한 추억과 변화, 성장에 대해 주고받는 선생님들의 대화에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엿보았다. ‘아! 정말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했구나!’ 그리고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정말 우리를 위해 늘 애써 주신다”고.

10여 년 전부터 교사의 권위적인 지도와 체벌의 대안으로 학생인권이 강조되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또 교권 침해가 문제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졸업식을 보면서 적어도 학생인권 침해나 교권 침해라는 단어는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특별히 우수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역도 아닌 보통의 공립학교지만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상식적인 학교가 가능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묵묵히 노력하신 한 분 한 분 선생님들 덕분일 것이다.

학교에서 배움의 공동체 수업 모델을 도입한 후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거나, 학생자치가 자리 잡아 가면서 학교 규칙 위반으로 학생을 지도하며 얼굴 붉힐 일이 거의 없다고 말하면 처음 반응은 “그게 가능해요?”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결이 뭐예요?”라는 질문이다. 그런데 비결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 이 학교에 와서 학교 분위기의 영향으로 내가 바뀐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가르치는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려 노력한 것이고(대부분의 교사가 아이들 이름을 다 왼다), 두 번째는 수업에 대해 어느 해보다 고민을 많이 하고 자청해서 수업공개도 했다는 점이다.

졸업식의 눈물은 과거와 비슷하나 다시 눈물 흘릴 수 있기까지 학교는 긴 세월 충분히 혼란스러웠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중심을 세우고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손연일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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