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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은 책을 한 권씩 소리 내어 읽어야 나가 놀 수 있기로 하였다. 일찍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점심을 채 먹기 전에 돌아오므로 이때부터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까지 얼른 부지런을 떨어야 한 권이라도 더 읽을 수 있다.

처음에는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 몇을 위해 마련한 일이다. 아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읽기를 어려워하는데,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고 하여 시작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만 읽어야 한다면 왜 그런지도 설명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서는 읽기가 자리나 잡을 수 있을지 염려도 되어 그냥 누구든지 한 권의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 잠시 나가 놀 수 있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영 한글을 못 떼어 걱정을 사던 아이가 처음에는 떠듬떠듬 읽기를 시작하더니, 매일 조금씩 거듭되는 읽기에 지금은 어느새 능숙해졌다. 처음에는 저도 제 자신이 못 미더운 눈치더니, 언젠가는 그런 자신의 변화를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칭찬을 받았다고 수줍게 털어놓는다. 부모님께서도 걱정을 많이 하셨을 텐데,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칭찬을 하셨을지 짐작을 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란 그림책을 골라왔다.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박힌 그림책이라 과연 잘 읽어낼 수 있을지 염려가 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결국 그 긴 그림책을 다 읽어내었고, 그런 자신이 스스로도 대견한지 한참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책 속에서는 널찍한 집으로 막 이사를 와서 행복에 겨운 한 가족이 나온다. 그러나 곧 층간 소음에 예민한 아래층 할머니 때문에 행복은 날아가 버린다. 할머니의 역정은 점점 더 도가 지나쳐서, 낮잠을 자다 위층 아이들이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만 듣고도 벌컥 화를 낼 지경이 되었다.

그 후로 아이들은 스스로를 생쥐라 여기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잘 먹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만 있으려 들었다. 그런 줄도 모르는 할머니는 혹시 당신의 귀가 아파서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사의 진찰을 받으러 간다. 그리고 그 멀쩡한 귀로 잘 들리지 않는 위층의 소음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그만 꼴사납게 귀가 커져버린다.

그리고 책의 중간에는 아이들의 부모님과 할머니가 소음 문제로 서로 부딪치는 장면이 스치듯 나온다. 현실의 부모님과 할머니라면 층계참에서 대판 싸움을 벌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만약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게 된다면, 모든 것이 자신들의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무나 놀고 싶고, 움직이고 싶은 스스로를 탓하고 또 탓했을지 모른다.

그림책 속의 할머니는 귀라도 커졌다. 피멍이 터지게 맞고, 굶고, 버려지고, 내던져지는 동안에도 가해자들은 눈썹 하나 까딱하는 법이 없는 현실에 비하면 그래도 일말의 위로가 되는 장면이다. 현실에선 어른들의 불평과 불만, 혐오와 거부를 자신의 온몸으로 감당해내야 하는 아이들 몸뚱이만이 부러지고, 부어오르고, 시퍼렇게, 또 시커멓게 변해갈 뿐이다. 몸도, 마음도, 온 미래도 모두 망가져 가는 것은 아이들뿐인데 도대체 이 일을 왜 해결해낼 수 없는 것일까?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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