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건을 다뤄왔습니다. 보람을 느끼기도, 안도하기도, 슬프고 아프기도 했습니다. 사건을 종결하고도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남아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은 아동, 청소년이 유명을 달리한 사건들이었습니다. “제대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어느 선배 판사의 말은 아직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런 사건은 사실 우리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교통사고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운전자의 부주의 뒤에는 관심 부족, 시스템 부재가 작용하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년간 수출 종목으로 자동차 생산에 전념해왔습니다. 도로를 넓혀서 자동차의 도로 주행 속도를 올렸습니다. 법령을 정비해서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특별한 잘못을 제외한 교통사고에 대해 처벌을 면하는 특례까지 두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사람들은 도로 밑으로 굴을 파서 길을 건넜습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차가 먼저 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골목에서도 차가 오면 양보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차는 남을 윽박지를 수 있는 권력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몹시 불편합니다. 

‘걷기 좋은 도시’를 추구하면서 걷기 환경은 꽤 좋아졌습니다. 지하도가 있어도 도로 위로 횡단보도를 내줬고, 주말에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차 없는 길을 만들어줬습니다. ‘보행자 주권’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런 노력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실제로 교통사고 사망 사고는 줄고 있습니다. 그래도 길을 걷고 도로를 건너다 보면 보행자는 여전히 을(乙)입니다. 그래서 우회전 차량에 대한 시스템을 정비하겠다는 소식은 반갑습니다. 학교 앞 교통시설에 대해 두 가지 제안을 할까 합니다. 

첫째, 학교 앞 횡단보도 면적 넓히기. 학교 앞 횡단보도의 면적을 지금보다 2배 이상 넓히면 좋겠습니다. 서울 대학로 큰길에 제법 넓은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넓어진 횡단보도가 보행자에게 어떤 안정감을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횡단보도가 넓어지다 보니 그 안에 차가 들어설 수 없습니다. 어지간한 파렴치가 아니고서는 그 넓은 횡단보도에 차를 들이고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차 두세 대 정도 공간이면 횡단보도를 두 배로 넓힐 수 있습니다. 넓어진 자리만큼 차는 공간을 손해 보지만, 사람은 그 몇 곱절 더 많이 그 공간에 다닐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양해는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학교 앞 횡단보도는 지금보다 2배 이상 폭을 넓혀도 됩니다. 

둘째, 교차로 대각선(X자형) 횡단보도 늘리기. 차를 위해서는 동시신호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위한 동시신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4거리 교차로에 횡단보도는 모서리 4개에 대각선 2개, 모두 6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대각선 횡단보도야말로 차가 아닌, 사람을 위한 동시신호입니다. 대각선 횡단보도야말로 ‘횡단’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늘고는 있지만, 지금보다 더 전향적인 생각으로 대각선(X자형) 횡단보도를 대폭 확대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학교 주변에는. 

안전 말고도 제가 이런 제안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질서 의식을 가르치려면 학교 앞에서, 그리고 제일 눈에 잘 띄는 곳부터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횡단보도에 차가 떡하니 들어서 있고, 신호 지키기를 기대하기보다 신호를 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면 이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단속, 규제, 이런 말에 시민들이 공감하고 따르리라 기대해선 곤란합니다. 우리 시민 의식은 이미 그보다 앞서 있습니다. 정권마다 구호처럼 외치는 ‘법치국가’의 초석을 다지려면 단속하고 규제하기보다, 시스템부터 훑어봐야 합니다. 우회전하는 차 보고 알아서 안전하게 운전하라, 정지선을 지키라고만 이야기해서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바꿔서 설득해야 합니다. 불합리한 현상을 그대로 두고 단속할 테니 지키라고만 하면 시대착오입니다. 차에서 내려 현장에 나가보고 직접 걸어 다니면서 역지사지의 마음과 눈높이로 시민의 생각을 읽어야 합니다.

<함석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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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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