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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기 한·일관계는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관여를 알리는 전단이었다. 그 결과 한·미·일관계에서 이 빠진 고리를 채우게 됐다. 동시에 미국은 이즈음 ‘두 개의 한국 정책’으로 한반도에서 현상유지를 지향했다. 한·일관계는 이처럼 미국과 일본, 한국과 미국의 양자관계에다 한·미·일 삼자관계의 중층적 틀 속에서 늘 움직였다. 50년도 지난 지금 그 관성이 여태껏 유지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한반도 정책 기저(基底)를 흔히 꿰뚫고 있는 데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임기 말의 문재인 정권과 획기적 관계개선을 꾀할 가능성은 낮다. 게다가 거침이 없는 시진핑의 ‘중국몽’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해야 하는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전략가들은 중국 견제에 미온적인 한국보다는 ‘기지국가’로서의 일본과 더욱 긴밀한 공조를 취하게 되어있다.

한·미·일관계에 기반을 둔 한국의 안보체계에 이제는 원심력을 대담하게 넓히는 ‘중국’ 변수가 끼어들게 된 이상, 한국이 지역체제의 구조 변화에 어떠한 형태로든 대응해야 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국이 미·중 간 하나를 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결정자들 간 공유되고 있을 ‘얼버무리기’(equivocation) 태도가 미국에는 불편하게 비칠 게 분명하다.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은 미국이 한국 그리고 일본과 개별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구도보다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져 한·미·일 삼각동맹으로까지 이어지는 구도를 선호한다. 말이 삼각동맹이지 실제는 미국을 정점으로 일본, 한국으로 순서가 있는 위계적 동맹구조이다. 이외에 바이든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대북 관계에서 미국보다 너무 앞서 나가거나 미국의 입장이 경시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대(對)중국 관계에서도 미국은 한국이 자국과 보조를 맞춰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속도조절론과 병행론이다.

이를 간파한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국관계 강화를 담은 구두친서를 주고받은 사실을 공개(3·22)했다. 미국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일본과 한국을 함께 순방하며(3·15~18) 북한과 중국(홍콩, 신장위구르)의 인권 문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미·중 알래스카 고위급회담(3·19)에서 파열음이 나온 직후에 이뤄진 친서 교환이었다. 여기에다 러시아 외무장관이 8년 만에 중국을 공식방문하고서 발표한 공동성명(3·23)에서 “민주주의 추진을 빌미로 주권국의 내정을 간섭하려는 시도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라고 중국과 발빠르게 공동보조를 취했다. 느슨해졌던 중국-러시아-북한의 블록화가 강화되는 조짐이다.

그래서일까 한·미 동맹 유지로 파생되는 한국의 상대적 자율성 축소에 유독 불편함을 느끼는 ‘애국적 민족주의자’들은 한·중관계가 한·미관계 수준의 이른바 ‘이등변삼각형’ 형태는 되어야 동북아에서 안정과 질서가 유지될 것으로 믿는 눈치이다. 이들은 전시작전권 환수와 이에 따른 한미연합사 구조개편,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 원자력협정과 미사일협정 개정 요구 등이 관철되어야 한국이 비로소 ‘내부 균형’을 이룬 것으로 간주한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의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당국자들에게서 조급함 내지 초조감이 읽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가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을 배척하는 인중거미(引中拒美) 술책을 펼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지만, 70년 가까이 유지해온 한·미 동맹의 도로에 팬 웅덩이의 숫자가 갈수록 늘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커진다. 팬 웅덩이는 어떡하든 메워지겠지만 말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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