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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베 정부의 계산된 공격은 아프다. 누군가는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고도 했다. 동의한다. 일본은 분명히 선을 넘었다. 물론 일본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한국이 계속해서 일본을 자극했고 거듭된 대화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을 넘어 갈등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 것은 일본이다. 분노한 국민들은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많은 이들은 외교의 실패를 지적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우리의 외교라인은 무엇을 했느냐는 질책이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잘 언급되지 않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오다가 이제 외부로 드러나기 시작한 우리의 취약성이다. 등에 칼을 맞았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등을 보여주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드러낸 취약성이 무엇이었기에 그들은 과감한 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나.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는동안 김상조 정책실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기남 기자

일본이 이번에 수출규제 목록에 올린 것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이렇게 세 가지이다. 하나같이 우리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부품들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수출 증가분 중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것이 무려 92%이고 경상수지 흑자의 80% 이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분석을 내놓으면서 반도체 단일 품목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는 마치 산유국의 석유 의존도 수준이라고 했다. 우리는 중동의 산유국을 운 좋은 나라라며 부러워하기는 할지언정 선진국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신문의 비유가 아픈 이유이다. 

반도체가 수출 증가의 거의 모든 것인데,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받게 된다면 우리 경제가 입을 타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낙관적으로 전망해서 7월21일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 사태가 빠르게 수습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여파가 최소 금년 4분기까지는 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인데, 당장 금년도 경제성장률의 하향 조정은 불가피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으로도 작년 1년 내내 소득주도성장 논란에 휩싸였다가 이제서야 간신히 진정 국면을 바라보던 문재인 정부는 또 하나의 악재에 부딪혔다. 게다가 내년 총선은 우울한 경제 성적표를 들고 치러야 할지 모른다는 돌발변수가 생겼다.

복잡하게 얽힌 글로벌 상품사슬과 반도체 부문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세계시장이 받을 파급효과도 만만치 않고 특히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기업도 간단치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8년 GDP 대비 무역량은 일본이 35%, 한국이 83%이다. 우리는 일본보다 2.5배 정도 더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이고, 따라서 외부 취약성도 더 크며, 무역전쟁에 돌입한다면 일본보다 우리가 입을 피해가 더 크다.

블룸버그는 또 하나의 아픈 현실을 지적한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실질적인 냉전관계를 유지해왔음이 경제 통계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한국 수출의 7.5%만이 일본에 대한 것이고, 일본 수출의 5.8%만이 한국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해외 직접투자 중 일본에 대한 것은 1.8%로 캐나다, 베트남, 인도에 못 미치고, 일본의 해외 직접투자 중 한국에 대한 것은 2.5%로 브라질, 태국, 싱가포르에 못 미친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한국, 일본과 더불어 2차대전 이후 제조업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을 보자. 독일의 수출 대상국 1위에서 15위를 보면 미국이 8.6%, 중국이 7.1%, 러시아가 2%를 차지하는 것을 제외하면 수출의 50% 이상이 다른 유럽 국가들과 엮여있다. 미국도 나프타 회원국인 캐나다 및 멕시코에 대한 수출이 30%를 차지한다. 그들은 서로 칼을 꽂을 수 없는 경제적 이유가 있는 반면 한국과 일본은 경우에 따라 칼을 꽂을 수도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일본은 뜬금없이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 가능성을 언급했다. 어떤 이들은 일본도 선거 때면 으레 북한 변수를 활용하곤 했다고 하지만, 6자회담 당사국 중 유일하게 동북아 정세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는 판을 바꿔보려는 의도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할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한·미·일동맹을 위해 우리는 미국의 처분만 기다리는 처지가 될 것이고, 결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세 가지가 우리의 취약성을 키웠고, 결국 등을 보였다. 하나같이 뻔히 알면서 오랫동안 바꾸지 못했던 것들이다. 산업구조 업그레이드, 무역 다변화, 동북아 협력관계 구축이다. 지나간 여러 정부가 5년짜리 정치적 득실만 계산하느라 손을 놓아버린 분야들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부들이 알면서도 미뤄두었던 근본적·장기적 과제에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촛불로 탄생한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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