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합천 해인사에서 큰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되었다. 직접 가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화면으로만 눈여겨보았다. 존재의 뚜껑을 따듯 누운 자세로 발을 환히 드러내 보이는 큰스님. 최대한 많이 땅과 접촉하는 자세로 최대한의 이승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얼굴보다는 발바닥을 앞장세우고 먼 길 떠나는 중이었다. 

성경을 읽는다고 저절로 신자가 되는 건 아니겠다. 분열과 증오, 조롱과 선동으로 얼룩진 뉴스의 홍수 속에서 쿵,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뜻밖의 가을 태풍 링링에 해인사 장경각 앞의 학사대 전나무가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그 놀라운 뉴스를 듣고도 며칠간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갈 뻔했다가 쓰러진 나무를 호출해 준 건 역설적으로 또 다른 태풍 마타였다. 마음이 흉흉한 탓인가. 어쩌자고 나는 이웃집 할머니의 늙어가는 얼굴에는 무심하고 태풍급의 사고에만 이렇게 반응하는가. 

내 고향 거창에서 뒤로 자빠지면 뒤꼭지가 깨질 만큼 합천은 가까운 동네다. 동네 어른들은 추수 끝낸 마을여행, 대성중학교 형들은 수학여행으로 해인사를 갔었다. 그때 꼬맹이였던 나에게 최치원이가 죽기 직전 지팡이를 거꾸로 꽂았더니 그게 나무로 자랐대. 귀에 솔깃한 전설을 들려주었다. 바로 그 전나무가 쿵, 쓰러진 것이다. 최치원 지팡이의 손자뻘쯤 되는 수령 250년의 나무라고 한다. 

전나무의 행방을 찾다가 현장 사진을 보았다. 밑동이 부러진 전나무는 커다란 허공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스님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듯 나무 안에서 나온 큰 구멍이다. 다음 나라에 가는 데 필요한 여권처럼 나이테도 환히 드러났다. 해인사 스님들은 나무들 세계에서 큰스님에 속할 나무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봉행하고 문화재청은 뿌리를 보존하고 후계목을 심어 후사를 잇기 위한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아, 고맙고 다행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언젠가 지하에서 하나로 반죽이 된다. ‘깜깜 한밤중 창밖에 비 내리고/ 등불 아래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의 울적한 심사를 읊던 ‘추야우중(秋夜雨中)’의 최치원. 지음(知音)보다 짙고 혈육보다 끈끈한 지팡이와 해후하며 또 어떤 시상에 잠기실지! 전나무, 소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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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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