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고되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 착한 지인이 있었다. 작은 일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고 누구든 계산 없이 성심성의껏 돕는 능력자였다. 하지만 사장은 그의 노하우만 날름날름 빼먹을 뿐 제대로 처우하지 않았다. 사람 좋은 지인은 고민은 하면서도 싫은 소리는 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처지에 답답해하면서 이기적인 사장의 승승장구가 부당하다고 여겼다.


조직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 미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 교수가 다양한 문화권에서 3만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먼저 타인을 나보다 먼저 배려하는 ‘주는 사람’(giver)으로 전체 중 25%의 비율을 차지한다. 자기이익만을 챙기는 ‘받는 사람’(taker)의 비율은 19%였다. 그 두 극단 사이에는 ‘맞추는 사람’(matcher)이 56%로 폭넓게 분포한다.


업무성과로 볼 때 이타적인 ‘주는 사람’은 아주 나쁘거나 아주 좋은 양극단을 달렸다. 이들은 조직 내 다른 사람들을 돕느라 정작 자신의 업무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등 ‘번아웃’에 빠지는 경우가 적잖았다. 이렇게 착한 ‘호구’들이 뒤처질 때 그럼 이기적인 사람들이 성공할까. 꼭 그렇진 않다는 게 그랜트 교수의 설명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 개념이 확실한 ‘맞추는 사람’들이 이들을 응징하기 때문에 성공을 하더라도 ‘반짝 성공’에 그친다고 한다. 그렇게 호혜주의에 기반한 사회협력이라는 원칙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 같은 원칙은 일찌감치 수학적으로도 검증된 바 있다. 로버트 액설로드 미 미시간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바탕으로 하는 컴퓨터 대회를 열어 수십 개의 다양한 전략들을 대전시킨 결과, 맘씨 좋은 ‘팃포탯’(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 최고의 강자였다고 <협력의 진화>(1984)에서 소개했다. ‘팃포탯’의 원칙은 간단하다. 상대방에게 기본적으로 호의적이고, 이후에는 받은 대로만 명료하게 돌려준다. 상대방이 한 번 배신했다 치면 한 번만 응징하고 이후에는 관대하게 뒤끝 없이 용서하고 다시 협력의 문을 열어놓는다.


반대로 복잡한 음모나 불신에 바탕을 둔 프로그램들은 오히려 승률이 낮았다. 한 번이라도 배신당하면 끝까지 응징하는 ‘프리드먼’, 상대방이 배신할 확률이 높다는 계산이 서면 먼저 뒤통수 쳐서 이익을 챙기는 ‘다우닝’, 상대방의 신뢰를 얻다가 느닷없이 배신하는 ‘트랜퀼라이저’ 등은 승자가 되지 못했다.


액설로드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네 가지 방법을 충고한다. ‘질투하지 마라. 먼저 배반하지 마라. 협력이든 배반이든 그대로 되갚아라. 너무 영악하게 굴지 마라.’ 사랑과 자비로 아울렀어야 할 듯한 세 번째 문장을 제외하면 설교나 설법의 한 부분이라고 해도 괜찮을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흔들린다. 재산을 둘러싼 형제자매 간 암투가 기업을 산산조각 낸 사례가 부지기수인데도 ‘호구는 되지 않겠다’며 역사를 반복한다. 얄팍한 상술로 온라인에서 그럴듯하게 치장한 물건을 팔다가 들통나서 분노의 소비자 폭격을 받는 사례는 잊을 만하면 다시 나온다. 


선의를 믿고, 꾸준히 진심으로 바르고 느린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들 보기엔 ‘호구’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진짜 이기는 사람들은 그런 호구들이다. 이들이 오랜 시간에 거쳐 얻는 ‘사회적 신뢰’라는 자산만큼 귀한 게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앞에서 말한 맘씨 착한 지인은 몇 년 뒤 독립해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로 살고 있다. 그를 호구로 봤던 사장네 회사는 업계에서 잊혀졌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의 실패에 초조해하며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한국어 문장은 끝까지 읽어봐야 아는 것처럼 인생의 결론도 오랜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최민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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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