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찾은 교토의 여름은 무덥고 습했다.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한·일 두 나라가 연일 주고받는 날선 언어와는 달리 교토에서 만난 지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갑게 맞이해줬다. 대화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악화 일로를 걷는 한·일관계로 이어졌다. 짧은 시간에 문재인 정부와 아베 내각 간 출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회의적 의견이 다수였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은 일본 지식인층에서조차 한·일관계를 논할 때는 냉철한 이성과 논리의 언어가 실종된다고 개탄했다. 그 자리를 ‘신념의 언어’가 차지했다. 한·일관계가 서울 출발 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정부 간 교류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학 간 학문적 교류와 협력 역시 예전과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확정된 교류 일정도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취소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특히 일본이 우위에 있다고 간주하는 분야의 협력은 더욱 그랬다. 열려있던 소통의 문들조차 하나, 둘씩 서서히 닫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한·일관계가 이성적, 합리적, 과학적이지 않고 이념(또는 신념)적으로 경화되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한다. 

첫째, 한·일의 민과 관이 질문을 던지고 함께 대답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각자 신념에 매몰되어 그 신념이 지향하는 것들을 절대선이자 정의로 맹신하고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 사실(fact)의 힘을 믿기보다는 강철 같은 신념을 내세워 한·일관계의 현실을 바꿔보려고 한다. 사실이 아닌 완강한 신념으로 무장한 언어는 소통이 아닌 불통을 만들었다. 그 언어는 곧장 무기가 됐다. 결국 ‘간헐적 반일 감정’의 주기만 단축시켰다. 

둘째, ‘군국주의 일본’이 보여준 야만성이 잠복기를 거쳐 아베의 시대에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아베에게 던질 ‘아름다운 복수’는 어쩌면 우리만의 공허한 감성적 수사일 수 있겠다 싶다. 일본이라고 해서 이성적 집단이 분출하는 높은 윤리의식과 정의가 왜 없을까마는 미국과 탯줄이 연결된 아베의 시선이 불길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를 더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때문이다. 이러한 ‘아베의 일본’을 이웃국가로 두고서 한·일관계의 미래를 밝게 그려나가기란 어렵다. 

셋째, 한·일관계의 이른바 패러다임 이동(shift)이 시작됐다.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이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을 의미한다고 할 때, 한·일관계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당대 일본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한국에 대해 공유하고 있던 신념과 가치체계가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양국 모두 ‘정상적 인식’으로 서로를 보는 것이 한계에 도달, 이제는 새로운 렌즈로 양국관계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작금 한·일의 불화는 두 정치지도자가 지니고 있는 세계관 충돌의 결과이다. 무엇보다 아베의 일본은 유독 한국인에게만 깊은 회오(悔悟)도 없이 역사로부터 애써 도망을 치려고 한다. 아베가 그 역사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지는 의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1965년 한일기본협정 시대의 한국이 아닌 지금의 우리가 여전히 일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긴 호흡으로 역사를 읽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퇴행적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 간 갈등에서 전환점은 어느 지점에서 만들어질 것인가?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긴 해도 한국이 1965년 기본협정을 폐기할 의사가 없다면 그리고 일본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맺기를 희망할 것이라는 점을 가정하면 어떤 형태로든 봉합은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처의 흔적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폐 속에 결핵을 앓은 자국이 완치가 되더라도 남는 것처럼 말이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서로 격돌한 시간도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저녁자리를 끝내고 어둠이 짙게 내린 교토의 거리로 나서자 고온다습한 공기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이병철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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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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