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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부-(3) 금융강국 바벨탑 쌓기 : 이것이 한국 금융감독 수준


박병률기자

시장은 규제를 싫어하고 금융 자유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시장주의에 기반한 금융 자유화는 감시와 감독을 피하는 다양한 논리와 명분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규제 노력 없이는 금융 자유화의 위험을 피하기 쉽지 않다.


지난 1월14일 서울행정법원은 경제개혁연대가 금융감독원을 대상으로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각하 판정을 내렸다. 경제개혁연대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 여부를 판정한 문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었다. 그러나 행정법원은 금융당국이 이 문서를 보유하고 있을 개연성이 없다며 소송을 각하한 것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문서가 없다는 것은 금융감독원이 론스타에 대해 산업자본 여부 판정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는 매각 당시는 물론 그 이후 6개월마다 해야 한다. 외환은행이 매각된 게 2003년 9월이니 정부는 무려 5년간 단 한 차례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하지 않았다는 셈이 된다.

이는 금융감독의 문제가 법제도의 차원이 아니라 정책적 판단과 실행의지의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외환은행을 팔아야 한다는 정책 때문에 정부가 법적용을 회피한 것”이라며 “금융감독기구가 정부기관으로 돼 있는 한 절대 공정한 금융감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후 감독’에 대한 믿음을 시장에 전달하려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이원화된 현 금융감독 체제를 대수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금처럼 관료 조직인 금융위가 정책과 감독을 좌지우지해서는 객관적인 감시체계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감시·감독체제를 강화하라는 말이 규제와 같은 법제도를 많이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라면서 “감시·감독이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감독기구를 공적 민간기관으로 독립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카드대란 당시 금융감독원은 2002년에 문제점을 발견했지만 2003년이 돼서야 대책을 수립했다. ‘내수진작’을 앞세운 재정부와 규제개혁위원회에 막혔기 때문이다. 유종일 KDI 교수는 “감시·감독기구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기구로 전락하게 되면 경제적 논리에 따라 시장을 감시·감독할 수 없게 된다”며 “감독 잣대가 오락가락하면 결국 시장의 신뢰를 잃고 실기를 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감사원은 2004년 카드사태에 대한 특감에서 금감위가 ‘감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해 감독 신뢰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당시 금감위의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인정 비율(LTV·집을 담보로 대출할 때 주택 가치의 일부에 대해서만 대출해 주기 위해 정하는 비율)의 경우 정권에 따라 40~75%까지 왔다갔다 했다”며 “경제적 논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정책적 목표에 따라 기준이 엿가락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 당국을 정부 통제하에 두고자 하는 욕심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금감위가 관료조직으로 부활했고, 노무현 정부때는 금융청 신설이 추진됐다. 정부가 감시·감독기구의 독립을 주저하는 동안 2000년 이후 우리는 적어도 세 차례의 중대한 감독실패를 경험했다. 대표적인 것이 카드사태이고, 부동산 버블을 불러왔던 2005~2006년 부동산주택담보대출과 2007년의 부동산 개발자금(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 역시 감독당국의 방조 속에 부실의 위험을 잔뜩 부풀린 경우였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이나 PF대출의 경우도 자금흐름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조기에 포착했다”며 “하지만 윗선(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아무리 보고해도 의미가 축소되거나 무시됐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에 법률안 제출권까지 준 이명박 정부의 금융감독체제는 지난 두 정부 때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융정책은 결국 규제완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규제완화는 곧 시장의 경제주체들에게 위험 부담을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이고, 이는 위험 부담에 따르는 이윤 획득의 기회를 늘려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시장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다.

반면 감시·감독은 이윤기회를 강제로 줄이는 데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유지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리 잘하더라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한 기관에 두 역할을 동시에 주면 시장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규제완화로 자연스럽게 쏠린다는 말이다.

감시·감독기구의 성공적인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은행이다. 인사권과 예산권이 독립된 한은은 비교적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성장을 위해 환율을 건드린 정부와 달리 시종일관 ‘돈의 흐름’이라는 기준에서 냉정한 통화정책을 운용한 한은에 대해 지난해 시장은 정부 금융조직 중 가장 높은 신뢰를 보냈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인사권과 예산권 정도만 독립시켜줘도 시장 감시기구는 얼마든지 제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한은 체계에 대한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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