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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부-(3) 금융강국 바벨탑 쌓기
ㆍ펀드판매·운용 종사자들의 부끄러운 고백


김재중·유희진기자


금융인들의 고해성사 “거품인줄 알고도 팔았다”


투자자에 대한 금융회사의 보호의무를 강화한 자본시장법이 지난달 4일 시행되면서 금융회사들이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을 무분별하게 파는 행위가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거품의 생성과 붕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금융시장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의 규제로도 안심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금융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그런 우려가 과장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거품 만들기 경쟁에 열중하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깨달음은 거품이 터지면서 나오는 요란스러운 폭발음이 들려온 뒤였다.


철학도 원칙도 없었다 (자산운용사의 한 임원)


“부끄러울 정도로 펀드 운용이 미비했다. 사서는 안될 주를 샀고, 팔아서는 안될 주를 팔았다.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 몰랐는데 운용을 잘못했다. 시장에 분명히 거품이 많았다. 주가순자산배율(PBR·순자산에 비해 주식이 몇 배의 가치로 거래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이 8배로 뻥튀기 될 정도로 거품이 많았던 게 분명한데 고객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중국이 끝없이 성장할 줄 알았다. 한창 중국 펀드 열풍이 불 때 고객들에게 가입 자제를 요청했어야 했고, 과열이라는 것을 알렸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들을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거품은 언젠가는 빠진다는 것을 예상했어야 하는데 과욕을 자제하기 힘들었다. 경기가 과열되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된다. 그렇게 낙관하다 보면 과도한 차입을 자제할 수 없게 된다.


고객들이 중국 쪽으로만 몰아서 무리하게 투자하려고 했는데 말리기가 힘든 측면도 있었다. 만약에 그게 크게 오르면 우리 입장이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몰빵투자(특정 상품에만 집중투자하기)를 권하기도 했고, 몰빵투자를 말리는 데 있어서 너무 미온적이었다. 그동안 이쪽 업계 종사자들이 너무 우왕좌왕했던 것 같다. 철학도 없었고, 원칙도 없었다.”




내 펀드도 절반 가까이 깨졌다 (2년차 은행직원)


“입사했을 때 이미 펀드 붐이 불고 있었다. 지점에서 펀드와 카드 판매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펀드에 가입하면 돈을 번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팔기가 수월했다. 한 달에 7000만원 가까이 유치한 적도 있었다. 통장에 돈이 있는 고객들, 조금 친해진 고객들에게 펀드를 권유했다. 요즘은 다시 적금 쪽으로 유도하고 있는데, ‘아 정말 뭐가 잘못되고 있구나’를 느낀다.


펀드에 대해 개괄적이고 전체적인 정보는 알고 있다. 은행에 들어오면 펀드나 예금 적금, 보험 등에 대해 교육을 받고 시험도 본다. 또 펀드 설명회에 가면 증권사 직원들이 상품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렇지만 파생상품 관련 펀드는 어떤 구조이고 어떻게 투자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펀드 종류가 너무 많다 보니까 하나하나 알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손님들에게 가끔 펀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하면 고객들이 ‘아가씨가 그냥 다 알아서 해줘’ 이러면서 그냥 사인만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야 펀드를 팔라고 하니까 팔았는데, 문제는 은행이 좋지 않은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안 그려봤다는 것이다. 막연히 주가지수가 계속 오르고 잘될 거라고 믿었다. 나도 모은 돈을 펀드에 다 넣었고 심지어 엄마한테 여윳돈을 보내달라고 해 그것도 넣었다. 나뿐 아니다.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다 펀드에 돈이 물려 있다. 펀드가 이렇게 빠질 거라는 것을 은행원도 몰랐다.


요즘 펀드 수익률이 안 좋다 보니 은행에 다른 일을 보러 왔다가 하소연하는 아주머니들도 계시고, 작정하고 찾아와서 항의하는 분도 있다. ‘나는 돈 깨져서 이렇게 잠도 못자는데 너는 잘 사냐. 얼굴 좋은 것 보니까 잘 자나보다. 고객 돈 까먹고’ 이러면서 막말하는 분도 있다.


그럴 때마다 ‘저도 상황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제 펀드도 지금 절반 가까이 깨져 있어요. 아주머니만 힘든 게 아니라 다들 돈 잃고 있는 상황이에요. 전반적인 위기이고 곧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진정을 시키고 있다.”


진짜 폭탄 터진다 (증권사 과장)


“역외펀드가 말썽이 많다. 환율 변화가 많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조건이 달려 있다면 그에 따른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판매할 때 이런 것들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을 것이다. 펀드를 판매한 직원이든 은행원이든 자신들도 잘 모르고 했을 거다. 기계적으로 가입서류에 사인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이론적으로 취약한데 경기 예측은 무슨 수로 하겠는가. 사실 나도 선물환 부분은 잘 모른다. 다들 2007년 주가가 활짝 피었을 때 그게 상투인 줄 모르고 뛰어들었고, 뛰어들게 유도했다. 영업하는 사람들이 펀드 가입 실적을 많이 쌓아 몇% 수당 받아 챙기려고 덤벼든 부분은 분명 문제다. 다행히 내가 관리하는 고객 가운데는 딱히 큰 손실을 본 사람이 없는 편이다. 지난해 초 역외펀드는 다 정리했기 때문이다. 무슨 혜안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우연한 기회에 정리하고 털었다. 증권사 직원 입장에서 손님들이 빠져나가면 월급이 줄어드는 건 가장 작은 문제다. 고객들이 ‘컴플레인(불만)’을 제기하는 게 큰 문제다. 사고가 터지면 해당 직원은 그대로 고과에 반영된다. 사실 사고 낸 사람들은 이미 다 구조조정 됐다고 본다.


증권사 직원들은 자기 고객이 자신에게 컴플레인 했다 어쨌다 하는 얘기는 절대 서로 안한다. 굉장히 많겠지만 서로 오픈을 안하는 것이다. 자기 마누라한테도 숨기는 얘기다.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문제다. 각 증권사가 엄청나게 팔아놓은 ELS·ELF·ELT 등 장외파생상품 만기가 몽땅 돌아온다.”


이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자산운용사 임원)


“우리나라의 문제는 어떤 현상이 너무 급속히 열풍으로 번진다는 데 있다. 특정 증권사를 중심으로 펀드 열풍을 주도했고, 정부도 이런 현상을 조장하는 데 일조했다.


특히 해외펀드에 대한 비과세 조치는 엄청난 악수였다. 중국·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인데 거기에 돈들이 몰려갔다.


중국과 베트남은 지난 몇년 동안 5~10배 오른 시장인데 꼭대기에 들어가 물린 것이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펀드가 뭔지도 모르는 70~80대 할머니에게 이머징마켓 펀드를 파는 일도 발생했다.


금융권이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1~2년 전을 회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 많다. 이미 은행장 연봉이 20%씩 삭감되면서 페널티가 주어졌다. 임금동결과 구조조정이 예고되고 있다.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부 감독당국, 거품에 부화뇌동한 투자자들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경제지나 일간지 경제면 헤드라인을 검색해 봐라.


그간 한국 금융권은 미국을 벤치마킹해서 투자은행(IB)을 만들자는 기치를 들고 전진해 왔는데 다 허물어졌다. 일대 혼돈기를 겪고 있다. 가시거리가 제로인 상황이다.


금융권 몸집 부풀리기가 거품의 토양 (전직 투자전략가)


“금융기관들이 몸집 부풀리기 경쟁에 나서면서 이른바 ‘캠페인’이 관행이 됐다. 기간을 정해 특정 펀드를 집중적으로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실적이 인사고과나 연봉에 그대로 반영된다. 증권사 직원 정도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고 있고 리스크를 관리할 능력도 있다. 그러나 이쪽 업계에서 먹고살려면 리스크를 알면서도 판매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증권사마다 리서치센터를 두고 각종 리포트를 낸다. 이게 주식투자 하는 사람들에게 판단 자료가 되기도 하고 증권사 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참고자료로 삼는다. 증권사의 전반적인 전략이 몸집을 키우는 쪽에 맞춰져 있다 보니 아무래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술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어느 증권사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주가가 급변동하던 지난 9~10월에 나온 리포트들을 봐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은행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은행은 기본적인 교육은 시키겠지만 증권사에 비해 펀드나 파생상품 등에 대해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품을 팔라고 경쟁을 시킨다. 심하게 말하면 은행 직원은 상품을 팔아야 할 책임은 있지만 고객이 사인을 하는 순간 책임이나 의무에서 벗어난다. 불완전 판매가 발생하는 완벽한 구조가 조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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