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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부 - (6) 벼랑 끝에 몰린 복지

송진식기자

지난 12일 경기 과천시 정부종합청사 앞. 전국 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원 50여명이 피켓을 들고 있었다. 정부의 추경예산 편성을 앞두고 지역아동센터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센터 운영의 정상화를 위해 추경에 351억원을 추가로 배정해달라”고 호소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에서 가난으로 숨진 사람들을 위한 추모집회를 열고 있는 민주노총과 전국빈민연합 회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역아동센터란 방과 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빈곤·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보육기관이다. 경제 형편이 어려워 부모가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가정이나 결손가정의 아이들에겐 끼니도 해결하고 공부도 하는 곳이다. 공공 보육체계가 부실한 한국에서 절실한 곳이다.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전국에 2810개의 아동센터가 운영 중이다. 이용하는 아이들은 8만2440명에 달한다. 이 숫자가 많아 보인다면, 빈곤층 아이로 추정되는 숫자가 120만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게 좋다.

올해 지역아동센터에 배당된 예산은 338억원. 외형적으로는 지난해 대비 132억원이 늘었다. 그러나 아동센터 대다수는 적자의 늪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보다 지원받아야 하는 센터의 수가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206억원의 예산이 2088개소에 배분됐지만 올해는 338억원의 예산이 2788개소에 배분된다. 각 지역아동센터가 받는 올해 월 지원금은 230만원. 지난해보다 10만원 오른 것에 불과하다. 복지부가 2006년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아동센터 1곳(29명 기준)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월 600만원이 필요하다.

센터마다 29~49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사회복지사, 시설장 등 3~4명이 근무하는 여건을 감안하면 월 230만원은 그야말고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이렇다보니 아동센터 운영자의 상당수가 십시일반으로 사재를 털어 운영비를 쓰거나 카드빚을 내가며 센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 역시 월 70만~80만원의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이광진 간사는 “경제난으로 센터를 찾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며 “예산이 더 지원되지 않으면 올해 안에 센터의 절반가량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원 대상 빈민 늘어? 오히려 줄었다

사회공공연구소 제갈현숙 박사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 등으로 인해 복지지출비용 증가분이 이전 노무현 정부에 비해 연평균 1%가량씩 감소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 경우 향후 5년간 복지지출분은 매년 1조원 이상, 총 5조원 이상 줄게 된다. 감세의 여파는 공공부조의 가장 큰 틀인 기초생활보장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느냐에 있다.

올해 정부가 책정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는 158만6000명이다. 지난해 153만명에 비하면 5만6000명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해 본래 책정했던 수급자는 159만6000명이었다. 증가처럼 보이는 것은 당초 수급 대상에서 6만여명을 줄인 데 따른 착시현상이다. 수급자를 줄인 것은 수급 대상 빈곤층이 없어서가 아니다. 수급자를 찾아내지 못했거나 수급자 선정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복지부의 한 공무원은 “수급자 발굴은 주로 지자체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들이 하지만 책정 기준만큼 발굴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올해 수급자 158만6000명은 지난해보다 줄어든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정부 주장대로 실제로 수급자 수를 늘리려면 지난해 책정 기준인 159만6000명에서 출발했어야 타당하다. 수급자를 줄인 결과 지난해 지원해 주지 못한 6만여명분에 대한 예산도 고스란히 남았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정부는 “취약·위기가구 발굴에 적극 나서겠다”며 부처 합동으로 지원센터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새롭게 발굴되는 취약·위기가구들에 대해 막상 구체적으로 어떤 예산으로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는 언급이 없다. 복지부는 “일단 3월까지 조사를 마친 뒤 보자”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수급자 수 선정을 놓고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지난 12일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추가로 12만명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복지를 돈벌이 산업으로 인식

또 다른 이명박 정부의 복지 정책 특징은 ‘산업화’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해야 할 분야를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산업 개념이 도입된 결과 국민연금·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도 돈벌이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의 의료 영리화 추진 반대 집회를 갖고 있는 보건의료 노동조합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복지부·식약청 등 시민 복지를 책임진 정부 부처들은 요즘 서민의 열악한 복지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까를 두고 고민하기보다 ‘경제살리기’에 바쁘다. 이 부처에서는 화장품산업 선진화, 의료기기산업 선진화, 해외환자유치 선진화, 첨단의료복합산업 등 연일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 구상이 발표되고 있다. 복지부의 한 공무원은 “요즘에는 우리가 산업 부처인지 보건·복지 부처인지 구분이 안된다”고 호소했다. 복지부는 지난달 화장품 산업 양성을 위해 올해 40억원의 R&D 예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화장품 개발에 40억원을 쓰겠다는 복지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쓸 돈은 너무 아끼고 있다. 광우병(VCJD·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 예산이 좋은 예이다. 정부·여당은 “광우병에 대한 연구지원 등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국내 유일의 광우병 전문연구기관인 질병관리본부 산하 광우병 연구실에 배정된 올해 예산은 5억원가량. 5억원 중 실질적으로 광우병을 연구하고 치료제 개발에 써야 할 R&D 예산은 한푼도 없다. 인력 운영비, 광우병 관련 연례 조사비용, 실험실·기기 관리비 등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국내 광우병 연구 실태는 열악하다. 질병관리본부는 내부 보고서에서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 연구를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미비로 연구수행 불가’ ‘프리온 연구 지원을 위한 대형 국가 지원 프로젝트 전무’라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광우병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대처할 능력도, 시스템도 전무한 것이다.

본부 측은 광우병 연구를 위해 매년 15억원씩 최소 4~5년은 지원이 돼야 한다며 예산을 신청했지만 전액 삭감당했다. 예산심의과정에서 “발생하지도 않는 광우병에 예산을 쓸 이유가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노년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국내 실정상 광우병 연구는 광우병뿐만 아니라 치매 등 다양한 분야로 응용될 수 있는 필수 연구”라고 말했다.

제약사 위해 거품 약값 빼기 후퇴

돈벌이 논리에 밀려 후퇴한 보건·복지 정책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여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어린이 기호식품 신호등 표시제’라는 것이 있다. 이 제도는 어린이 식품의 성분과 영양을 따져 그 위험도에 따라 빨강(안전), 혹은 녹색(안전) 등으로 포장지에 표시해주는 제도다. 색깔만 보고도 유익한지, 나쁜지 알 수 있다. 학부모·시민단체의 수년간 숙원사업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멜라민 파동 등을 겪으며 올해 안 제도 도입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진전이 없다. 업계의 반발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한 식약청 관계자는 “경제난에 부딪혀 기업들이 어려운데 그 제도를 도입할 경우 경영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되므로 어린이들의 안전을 유보해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약값 거품빼기 사업도 기업 논리에 부딪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약품의 상당수가 제약사와 의·약사간 리베이트 비용이 반영되어 있어 가격이 부풀려져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2007년부터 ‘약제급여평가위’를 구성해 건보적용 약품에 대한 약값을 재평가 중에 있다.

지난해 전체 건강보험재정 지출액 35조원 중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30%가량인 10조원 이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수치인 17%의 배에 가깝다.

그러나 올해 새로 구성된 급여평가위원들이 ‘친 제약사’가 아니냐며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또 급여평가위 연구 결과 고지혈증 약품에 대해 600억원가량 약값을 인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정부는 3년에 걸쳐 인하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꺼번에 인하할 경우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논리다. 이 때문에 해마다 200여억원씩 건보재정에서 거품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

시민의 미래-기업이익 맞바꾼 국민연금

국민연금도 산업화 논리의 희생양이다. 경제위기를 맞아 무너진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해 ‘밑바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연금 재정이 흘러나가고 있다. 시민의 미래와 일부 기업·주식투자자들의 ‘이익’을 맞바꾸고 있는 셈이다.

복지부는 지난 4일 오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정부 가수익률 기준)은 0.01%, 수익은 166억원으로 잠정 집계했다. 주식에서 19조3564억원을 손실봤지만 채권에서 19조1524억원, 대체투자·금융수익 등에서 낸 수익으로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해외연금의 경우 일본 연금이 마이너스 13.9%, 캐나다 연금이 마이너스 14.5% 등 대부분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선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3년간 국민연금의 평균 운용수익(4.67%)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연금은 국가의 예산도, 재정도 아니다. 시민 개인이 장래를 위해 국가에 신탁한 돈일 뿐이다. 국가가 재정을 잘 운영할수록 훗날 개개인이 받는 연금액도 늘어난다. 그래서 매년 연금을 운용할 때 최대한의 수익을 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 마이너스 수익을 보지 않는 것이 원칙은 아니다.

지난해 주식에서만 19조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 이를 반으로만 줄였어도 최소 10조원가량의 돈을 시민들이 훗날 더 받을 수 있었다. 그 비용을 안정적인 채권에 투자했을 경우의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금액은 훨씬 커진다.

그럼에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밑빠진’ 주식시장에 재정의 ‘물붓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해의 큰 손실에도 불구하고 올해 연금재정의 주식투자 비중은 지난해와 동일한 17%다. 이 경우 최저 12%, 최대 22%까지 주식투자 비중을 조절할 수 있게 돼 올해도 얼마나 많은 연금재정이 낭비될지 예측이 어렵다.

복지부는 최근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식종목을 공시하도록 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에 대한 실시간 감시가 가능해지자 슬그머니 주식투자비중을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주식부문에 대한 연금재정 손실 정보가 더 쉽게 알려지게 되자 그나마 비판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다.

복지 수준, OECD 꼴찌


노인이 봉사단체로부터 제공받은 반찬으로 단칸방에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양극화 실태와 정책과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가구 월 평균소득의 절반도 안되는 빈곤층의 규모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전국 최저생계비 이하(4인 가족 기준 132만원) 계층은 540만명에 달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153만명에 불과하다. 시민 380여만명가량이 국가로부터 가장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고 있지 못한다는 얘기다.


 

복지재정 지출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통합재정지출 중 복지지출 비중은 OECD 국가 평균(55.4%)의 절반(26.7%) 수준이다.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도 8.6%로 OECD 평균의 3분의 1, 우리보다 뒤처진 것으로 인식하는 멕시코의 11.8%(2001년 기준)에도 못 미친다. 이때문에 OECD 국가 군에서 한국의 사회복지 지표는 거의 전 분야에서 꼴찌를 기록 중이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가 2006년에 펴낸 ‘사회지표를 활용한 국가경쟁력 개념연구’ 자료에 따르면 총사회복지지출의 경우 OECD 30개국 중에서 30위, 근로소득지원은 29위다. 공적의료지출 규모도 29위, 비의료서비스 지출도 29위다.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유럽 선진국들은 과대한 복지지출을 이유로 이른바 ‘복지병’을 고치고자 복지 축소에 나섰지만 우리는 그럴 형편이 못된다. 선진국의 절반이라도 따라가려면 앞으로도 계속 복지지출을 늘리고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조세를 늘려 재정을 확충해야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증세보다는 감세를 선택했다.

이명박정부에선 보건·복지도 ‘돈벌이 산업’

진보신당이 지난해 말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올해 정부의 전체 지출규모는 273조여원으로 2008년(257조여원)보다 6.5% 늘어난 데 반해, 복지분야 지출은 67조6500여억원(2008년)에서 73조7000여억원으로 9%가량 증가했다.

표면적으로는 복지비용 증가율이 총지출 증가율을 초과, 복지지출이 크게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지비용 증가분에서 국민연금, 노령연금 등 자연증가분(4조5000여억원)을 제외하고 나면 실제로 남는 증가액은 1조786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6% 증가한 것에 그친다.

최근 복지 지출도 한시 지원의 땜질

올해 신규 복지사업의 경우에도 경제위기에 따른 긴급지원사업이 대다수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복지부 소관 예산 지출안’에 따르면 신규 사업으로 책정된 예산 3700여억원 중 노인장기요양보험 자연증가분과 연료·식비 등 생활보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 2330여억원에 달한다. 생활보조비의 경우 올해 한시적인 집행으로 끝나므로 실질적인 복지 확대라고 보기 어렵다.

남은 신규사업 중에서도 보건산업분야 연구개발비용이나 행정 운영비용 등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지난 12일 정부가 발표한 대규모 추경예산에 포함된 복지분야 지출도 저소득층에 대한 6개월짜리 한시적 지원이나 저리 대출 등 일시적인 ‘땜질’에 그쳤다.

성장 우선론에 복지부는 왕따 

한국이 현재의 수준이나마 복지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지 10년이 채 안된 데다 이마저도 ‘성장우선론’에 눌려 제대로 정착되지도 못했다. 지난 1월 복지부가 신빈곤층에 대비한 정책을 발표하던 날의 일이다. 복지부는 기존 정책들의 수혜자를 소폭 늘리는 것 외에 경제위기를 맞아 일시적으로 빈곤층으로 전락한 계층 등에게 긴급생활비를 지원하고 대출이자를 보조해주는 새로운 방안을 준비했다.

이런 내용들을 담아 원래 오후 2시에 기자회견을 예정했지만 회견은 오후 5시쯤에야 열렸다.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대책은 결국 이날 발표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복지부가 준비했던 대책은 지난 12일 기획재정부 등을 통해 추경예산에 반영됐다. 복지부가 할 때는 안되고, 재정부가 할 때는 되는 것, 이것이 한국 복지를 만드는 정부의 현주소다. 또다른 복지부 관계자는 “국무회의 때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해야 하는 복지부장관은 현 정권에서 사실상 왕따”라고 털어놨다.

기초복지 도입도 유럽에 반세기 뒤져

대다수의 학자들은 한국에 본격적인 복지제도가 도입된 원년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1999년으로 보고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전에도 이와 유사한 ‘생활보호법’이 61년 제정돼 시행된 바 있지만 말 그대로 ‘구휼’에 그치는 수준인 데다 당시 불법적으로 집권한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시기가 외환위기 이후라는 점으로 볼 때 대공황을 겪은 뒤 복지제도를 확충한 과거 유럽의 움직임과 유사하지만 시기로는 유럽보다 반세기 가까이 뒤졌다.

외환위기 이후 10여년의 짧은 기간에 건강보험 통합(99), 국민연금법 전지역 확대(98), 고용보험 확대(99) 등 필수 사회보험들이 차례로 도입된 것은 일련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아직 복지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립의료원 민영화, 서민 갈 병원 사라져

2003년 중국발 사스 파동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사스(SARS·중증급성 호흡기 증후군)는 사스-코로나 바이러스(SARS coronavirus)가 인간의 호흡기를 침범하여 발생하는 질병이며 2002년 11월에서 2003년 7월까지 8096명의 감염자가 발생, 774명이 사망했다.

가까운 한국에도 사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고 정부는 대책 마련을 서둘렀다. 문제는 병원이었다. 사스를 관리하고 치료하려면 지정병원이 필요한데, 어느 병원도 사스 환자를 맡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 국립대 병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유일하게 사스 구호기관으로 지정된 곳이 바로 국립의료원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달 초 이 국립의료원을 사실상 민영화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현 서울시 을지로에 있는 국립의료원 부지를 팔고 서울 외곽이나 근교에 최첨단 병원으로 새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연간 2000억~3000억원의 운영적자가 발생해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병원 운영은 ‘특수법인’으로 만들어 재정·인사 등을 독립적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국립의료원 노조 박성수 위원장은 “말이 좋아 특수법인이지 이는 공공기관인 의료원을 민간병원으로 만든 것과 똑같다”며 “사스와 같은 재난·전염병 상황 시에는 공무원 신분인 국립의료원 직원들 말고는 위험을 감수하고 환자를 돌볼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실장은 “그나마 서민들이 저렴하게 이용하던 의료원을 민영화하면 병원비가 늘어날 것은 뻔한 일”이라며 “국립병원이 연간 2000억원 정도 적자 보는 것은 그 기능상 정상”이라고 말했다. 최근 재정부가 발표한 ‘병원 영리법인화 허용’ 방안도 같은 맥락이다. 기재부는 “해외 의료수지 적자폭이 해마다 늘고 있다”며 “국내 병원을 발전시켜 해외 의료 수요를 국내로 돌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영리법인으로만 제한된 병원들이 영리법인화할 경우 의료비 상승과 건강보험재정 악화 등 수많은 부작용이 예고되고 있다.

우석균 실장은 “해외 의료서비스 이용자 대부분은 부유층이라 국내 병원을 영리법인화해도 적자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병원이 영리화될 경우 돈이 안되는 서민 환자나 건강보험 환자는 받지 않는 병원이 무더기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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