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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부-(6) 벼랑 끝에 몰린 복지

오건호 | 사회공공연구소 실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로 임금을 받고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가족의 생계를 임금에만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로부터 보육료로 50만원을 지원받는다면 그만큼 임금이 오른 것과 같다. 민간의료보험에 10만원을 내야 받을 수 있는 혜택을 건강보험에 4만원만 더 내 얻을 수 있다면 가계소득을 6만원 늘린 것과 같다.

서구 노동자들은 우리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한다. 그들 역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은 많지 않지만, 사회로부터 다양한 복지를 얻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회사(노동시장)에서 얻는 소득이 ‘시장임금’이라면, 보육지원금, 노인요양지원금,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 기초노령연금 등 사회적으로 얻는 수혜는 ‘사회임금’이라 할 수 있다. 복지를 강화하자는 것은 사회임금을 늘리자는 이야기다.

사회임금은 ‘필요에 따라’ 제공된다. 아이 수에 따라 보육료를 지원받고 어르신이 계시면 기초노령연금을 받는다. 민간의료보험에선 가입한 상품에 따라 보장액이 다르지만 건강보험에선 보험료 납부액과 별도로 아픈 만큼 적용받는다.

경제위기 시기에는 사회임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사회임금이 커지면 서민들의 생계 위험이 줄어들고,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감소한다. 그래서 사회임금은 시장임금과 함께 노동자가 의지하는 양대 기둥이다.

보육·노인요양 지원금, 노령연금 등 사회임금 빈약

사회임금 앞에는 두 가지 장벽이 있다. 첫째, 재정 장벽이다. 세입에선 직접세 비중이 작다. 특히 누진적으로 부과되는 소득세가 크게 부족하다. 2006년 우리나라 소득세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4.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9.2%에 비해 5.1%포인트 부족하다. 한해 GDP를 1000조원으로 치면, 앞으로 매년 51조원을 더 소득세로 거두어야 OECD 회원국 값을 할 수 있다. 세입이 부실하니 복지도 취약하다. 2005년 우리나라 사회복지비 지출은 GDP 대비 6.9%로 OECD 평균 20.5%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복지 불량국가’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나라를 거꾸로 몰고 간다. 부자,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대대적 감세로 세수 감소분이 임기 5년 동안 무려 96조원에 이른다. 이러니 사회임금을 늘리기 어렵다.

올해 복지재정 지출에서 국민연금 수급자 증가, 기초노령연금 대상 확대 등 법률에 의해 시행되는 자연증가분을 제외한 증액분은 고작 1조6000억원이다(정책적 증가율 1.8%). 20만원까지 올리겠다는 대선공약과 달리 기초노령연금은 여전히 8만4000원에 묶여 있다. 대대적인 감세로 중앙재정에서 지방에 지원하는 지방교부세가 5조원 줄어들어 지방정부의 복지사업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지자체가 월 1만2000~1만8000원씩 노인에게 제공되던 교통수당을 올해 전면 폐지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취약한 직접세 -> 작은 국가재정 -> 복지 불량국가’ 고리가 이명박 정부에서 심화일로에 있다.

 

복지를 시장에 맡기는 이명박 정부두 번째 장벽은 ‘사회복지의 시장화’다. 사회임금이 늘어나기 위해선 복지서비스가 공공영역에서 제공돼야 한다. 똑같은 서비스라도 시장에서 상품으로 매매되면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려운 사람들은 이용하기 힘들어진다.

2006년 미국은 GDP의 15.3%를 의료비로 썼음에도 병원 문턱이 서민들에게 여전히 높다. 영국은 GDP의 8.4%를 사용했지만 국민들이 의료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이용한다. 미국에선 의료서비스가 사보험, 민간의료기관에서 구입되는 시장상품이지만, 영국에선 공적 재원, 공공의료기관을 토대로 환자에게 필요한 만큼 제공되는 사회임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복지서비스는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서민들은 어려운 살림에 민간의료보험, 사연금 보험료를 내야 하고, 작년에 노인요양보험이 도입되었지만 요양서비스는 거의가 민간기관에서 제공된다. 엄마들이 선호하는 공보육시설은 전체 5%에 불과해 아이들은 영세한 민간보육시설로 가야 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사회복지를 더욱 더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사보험사에 개인질병정보를 제공해 민간의료보험의 성장을 도우려 하고, 영리병원을 허용해 의료기관의 돈벌이 경영을 재촉한다. 보육, 노인요양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입하는 바우처제도(복지서비스 이용권)를 확대해 오히려 민간기관 복지를 늘리고 있다.

복지 경험 없어 복지에 기대하지도 않는 병폐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이기고 사회임금을 늘리려면 시민,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복지를 체험할 수 있는 상징적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다수 국민들이 복지를 원하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까닭은 제대로 된 복지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에 주목하자. 민간의료보험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도 그나마 절반의 신뢰를 얻고 있는 게 건강보험이다. 진보정당이 내놓았던 무상의료를 되살려내자. 무상의료는 공짜의료가 아니라, 우리가 낸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공단이 진료비를 전액 책임지는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에 내고 있는 사보험료만 건강보험으로 전환해도 가능한 이야기다. ‘사보험 제로화, 건강보험 전액 책임’을 내걸고 무상의료운동을 벌이자.

둘째, 노동시장의 불안정화에 따른 복지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노령, 질병, 실업, 산재 등을 다루는 사회보험은 사회구성원들이 일을 해 번 소득으로 보험료를 낸다고 가정하에서 설계되었다. 지금 노동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보험료 납부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국가가 불안정노동자의 보험료를 지원하는 획기적인 보험료체계 혁신이 요청된다. 비정규보호법안에 이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

 

감세 비판하면서 정작 세금 내기는 싫어해셋째, 국가재정을 키우기 위해선 직접세 증세가 불가피하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명박 감세가 부자만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내가 얼마라도 더 내야 하는 증세엔 소극적이다. 세금이 복지로 되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세와 복지를 연동한 재정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부유계층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요구하되 시민들도 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용불안 광풍이 몰아치는 경제위기 시기다. 시장임금이 휘청거린다. 재원 마련과 복지 확대를 함께 담고 있는 것이 사회임금이다. 버는 만큼 내고 필요한 만큼 받는 사회임금 인상운동을 벌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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