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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7) 정글에 던져진 교육

이병곤|런던대학교 교육연구대학원 박사과정·교육철학



경쟁아닌 것 무가치하다는 고정관념

인간에게는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 강하게 작용한다. 자신의 믿음이나 경험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속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서울 강북의 한 중3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한국 사회가 집단 최면처럼 ‘선택적으로 지각’하고 있는 믿음이 바로 ‘경쟁 신화’이다. 경쟁은 효율과 발전을 담보하는 부동의 지렛대였다. 그 믿음이 수십년간 철저하게 교육에 투영된 현실이 바로 우리의 입시지옥이다.

2009년 2월3일 영국의 가디언 신문은 ‘백인 중산층 가족이 명문 대학을 지배하다’라는 제목 아래 큼지막한 기사 하나를 내보냈다. 카시(Caci)라는 시장동향 전문 조사기관이 17개 대학 입학생 1만7000명의 가정환경을 조사한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상위 2% 계층이 명문 대학 입학생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층 격차 심화시킨 영국 공교육

이는 새삼스레 밝혀진 사실이 아니다. 영국의 최상위 대학은 이른바 ‘러셀 그룹(Russell Group)’이라 불린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런던정경대학 등 러셀 그룹 소속 학교 20곳은 정부가 보조하는 연구 기금 가운데 3분의 2를 독식한다. 이들 대학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최상위 계층에서 충원되는 것이다.

계급 격차에 입각한 교육 수혜의 분리 현상은 영국 교육의 역사에서 오래된 전통이었지만 지금처럼 교육에서의 불평등 현상이 더욱 심화된 시기는 1980년대 초반 대처 전 총리 집권 이후였다. 시장 경제는 물론 사회복지와 보건 의료, 교육 서비스 등 공공 영역에 휘몰아쳤던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에서 30년 후의 계층 격차 심화가 비롯된 것이다.

그로 인해 오늘날 교육과 관련된 영국인들의 행복 지수는 높지 않다. 밤거리에는 칼부림을 일삼는 청소년이 늘고, 어린 자녀의 보육비 걱정으로 젊은 맞벌이 부부들은 한숨이 깊다. 빈곤선 이하의 어린이 숫자는 200만명을 넘어섰다. 어느 지역에 사는가에 따라 공교육 서비스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결국 ‘모든 이들을 위한 양질의 공교육 제공’이라는 교육 이념이 실종되고 말았다.

차별 없는 북유럽 교육이 더 질 높아

이런 측면에서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같은 북유럽 선진국처럼 교육에서의 평등성과 학습자 개인의 자유를 꾸준히 지원해 왔던 나라들이 보여준 교육 성취는 의식 있는 영국의 교육학자들에게 늘 부럽고도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이들 국가가 PISA와 같은 국제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어느 학교에서든 어느 학생이나 차별을 두지 않고, 자신들의 능력 수준에 맞추어 학습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교육서비스를 보장해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어려움에 빠진 이유는 총론을 잘 몰라서 그렇게 된 게 아니다. 비록 ‘모든 이들을 위한 공평하고도 자유로운 교육’에 심정적으로 동의할지 모르나 실제로는 ‘내 자식의 입시 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사교육에 입각한 강압적 교육’을 거의 모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시해 왔다. 그 결과 경쟁 신화는 비수로 돌변해 모든 이들의 가슴에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선택적 지각’에 따른 형벌로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교육 경쟁으로는 미래 없어

명심하자.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교육 경쟁으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 신자유주의를 이끌었던 대서양 양쪽 두 국가의 교육지표나 현황을 살펴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하지만 발틱해 연안의 북구를 보라. 스웨덴과 핀란드에서는 교육에서의 총론을 가지고 씨름한 것이 아니라 각론을 가지고 탐구하면서 실천에 옮겨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자리에서는 교육과 관련하여 두 가지 측면을 제안하고 싶다. 첫 번째는 솔직함이다. 교육계 단독으로는 입시와 사교육 문제를 도저히 풀 수 없노라 솔직하게 고백하자. 입시지옥을 교육 영역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사회문제로서 새롭게 인식하자. 그래야만 노동이나 복지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도 공동의 해결책을 들고 힘을 합치려 나설 것이다.

모든 이를 위한 공평하고 질 높은 공교육이 대안

두 번째는 용기이다. 입시 문제는 상대하기 매우 어려운 사회적 과제이다. 불행히도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거나 그들로부터 지혜를 구할 수도 없다. 입시 경쟁을 이렇게 치열하게 벌이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으니까. 결국 우리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간 입시 경쟁이라는 검문소를 통과하기 두려워서 갓길로 에둘러가듯 이런 저런 교육개혁을 시도했으나 거의 모두 공염불에 그쳤다. 정면 돌파만이 살 길이다. 비록 목표 달성에 10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입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진정한 용기로 온 국민의 지혜를 모으자. 국가 차원의 특별기구나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바람직하겠다.

다시 천명하거니와 ‘모든 이를 위한 공평하고 질 높은 공교육의 제공’이 총론이다. 경쟁 신화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적 요소와는 과감히 결별을 선언하자. 그리고 솔직함과 용기를 가슴에 품고 지금부터라도 치밀하게 각론을 써나가자. 이 길이 아니면 한국 교육은 진정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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