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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부 - 7 정글에 던져진 교육

최민영·임지선기자

신자유주의에 휩쓸린 한국 교육

‘교육은 곧 시장과 경쟁이다.’ 이명박 정부가 학교교육의 이념을 바꾸고 있다. 보수주의 교육혁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나라 영국과 미국을 벤치마킹한 결과이다.

마거릿 대처 영국 정부는 교육을 대대적으로 손댔다. 1980년대 영국을 강타한 경기침체의 원인을 정체된 교육제도가 초래한 학력저하 때문이라고 진단한 데 따른 것이었다. 자연히 해결책은 ‘경쟁’과 ‘선택’이었다. 일제고사를 실시했다. 학교별 순위도 공개했다. 학부모에게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이유였다.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학교정보공시제·고교선택제 및 ‘고교 다양화 300’, 국제중학교 정책과 닮았다. 



국제중학교 설립에 찬성하는 시민과 반대하는 시민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서로 등진 채 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미국·영국 제도 무분별 도입

영국은 신자유주의 교육을 도입한 이후 중등교육이 무시험·학비 무료의 공립학교, 입학시험·학비 유료의 사립학교, 입학시험을 보는 공립학교인 문법학교로 나뉘었다. 이명박 정부의 일반고교, 자사고·특목고, 기숙형 공립학교와도 유형이 같다. 특히 미국의 교육정책은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외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들의 미국박사 비율이 70%가 넘는다는 학술연구진흥재단의 통계도 있다. 특히 90년대 이후로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 충분한 논의나 검증절차 없이 우리 사회에 직수입됐다. 학교운영위원회 및 대학이사회 제도, 교원평가, 대학평가, 시·도교육청 평가, 자율형사립고, 입학사정관제 등 굵직한 정책은 모두 미국에서 일정 시차를 두고 건너온 것들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이영탁 이사는 “북유럽과 달리 최근 영·미식 교육은 모든 이들에게 수월성(성적 높이기)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귀족학교’의 등장과 그에 따른 사회의 계급화를 촉진했다”고 진단한다.

중산층도 감당못하는 영국 사립학교 등록금

“현재 영국의 사립학교 등록금은 몇 만파운드 수준입니다. 웬만한 중산층도 감당하기 어렵죠. 주어진 조건을 보완하지 않고 무조건 경쟁하면 ‘불공정 경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따라하고 있는 교육모델입니다.”

이같이 ‘민간’에 의한 고급교육은 교육의 민영화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국가가 수돗물·가스·전기 등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2012년까지 100곳의 사립고교들이 자율형사립고로 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재단전입금 비율을 학생등록금의 5%선으로 낮추면서도 정부의 예산 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공교육 전체가 한꺼번에 특성화·전문화된 교육을 하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고 효율도 적기 때문에 사학에 맡기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추진하기보다는 민간에 맡겨야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학교 운영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고급 교육→고급 일자리→고급 인생

그러나 ‘고급’ 교육을 민간이 담당하면 학부모는 ‘소비자’로서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중학 입시 부활’의 신호탄인 국제중의 경우 연간 학비만 700만원에 달한다. 서울 소재 외국어고 역시 경비를 포함한 연간 평균 등록금이 약 700만원이다. 신설 예정인 자율형사립고의 등록금도 외고 수준으로, 일반계 고교보다 3배 이상 비싸다. 지난해 3분기를 기준으로 할 때 소득 1분위(최하위)가 96만원이라는 통계청 자료를 감안한다면 저소득층이 자녀를 국제중과 자사고에 보내려면 연간 최소 7개월치 임금을 학비로 지출해야 한다. ‘1000만원 시대’를 맞은 대학 등록금까지 감안하면 중산층 이하의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은 점점 먼 얘기가 된다. 이들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단계의 사교육비도 마찬가지다.

이런 교육의 사회적 결과는 명백하다. ‘고급’ 중등교육을 받고 명문대를 졸업해 고소득 일자리를 잡는 엘리트와 그런 통로에 접근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경쟁에서 도태되는 인생으로 양극화될 수밖에 없다. 영국의 경우 연간 학비 수만파운드짜리 사립학교 학생들이 전체 학생수에서는 10%에 못미치지만, 대입에서 최상위 성적을 내는 100개 학교 가운데 80% 이상을 차지하고, 이들은 대부분 고급직종에 일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사교육비 늘리는 경쟁 교육

“6학년생인 아이를 대치동 학원에 처음 보내게 됐어요. 한 유명학원의 수학반에 보내려는데 학원 측에서 ‘선행 몇 년 했냐’고 묻더군요. 그런 거 한 적 없다고 했더니 ‘우리 학원 다니기 어려울 것 같다. 여기서 2년 선행은 보통’이라고 하더라고요. 등급시험을 봤는데 우리 아이는 초등 2~3학년 아이들과 같은 수업을 들어야 한다나요. 결국 인근의 한 수학학원에 보냈더니 우리 아이 또래는 벌써 중3학년 과정을 배운다더군요. 수학·영어학원비가 교재비를 포함해 첫 달에 100만원이 들었어요. 이 정도면 많은 것도 아니라던데,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할까요.”

학부모 유모씨는 지난 겨울방학 때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처음으로 학원에 보내는 과정에서 사교육의 실체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약속에도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어 사교육비 11.8% 증가

그동안 ‘경쟁’을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는 자사고 및 국제중 신설, 3불정책 폐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사교육비를 줄이는 길일까. 집권 첫해인 2008년, 사교육비 총규모는 8600억원(4.3%)이 늘어난 20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아륀지 파동’으로 상징되는 영어몰입교육 논란 등의 영향으로 영어 사교육비는 11.8%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소득이 높을수록, 공부를 잘 할수록 사교육비를 더 많이 투입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2008년치 발표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700만원 이상인 가구는 100만원 미만의 가구의 8.8배를 지출해 월평균 47만4000원을 자녀 학원비로 쓴다. 대학 문턱에 가까워지는 고교가 되면 11.2배까지 벌어진다. 공교육 내의 석차나 대학 입학이 사교육 효과에 의해 좌우되는, 불공정경쟁 상황이다.

그래도 정부는 여전히 경쟁을 강조한다.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질이 향상되면 사교육비가 향후 수년에 걸쳐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의 사교육비 증가 추세에 대해서는 정책의 본격적인 효과를 거두기에 앞선 과도기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가 제시하는 사교육비 경감 교육의 모델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낙오방지법(NCLB·No Child Left Behind)’을 본뜬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 학교 지원, 교원평가의 연계 정책이다. 학력미달 학생의 비율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것이지만, 사실은 2011년부터 성적이 좋은 학교는 더 많은 지원을 받고 성적이 나쁜 학교는 덜 받는 구조가 된다. 이 때문에 오히려 학교 간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학력평가로 저소득 지역 학교 몰락할 것

공립학교 현장에는 불안감이 돌고 있다. 서민층이 많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중학교 교사는 “정부 지원을 몇 년 받는다고 해도 낙후한 학교 건물이나 시설, 저소득층의 비율이 높은 환경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기피학교로 낙인찍힐 수 있다”고 걱정했다.

“교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지역의 교육현실을 무시할 수 없어요. 일제고사 성적이 전년에 비해 오른 정도에 따라서 지원을 차등화한다는데 기피학교가 되면 학생들이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성적이 오르지 못하면 지원을 못 받으니 점점 도태되고, 내년부터 실시되는 학교(고교)선택제까지 더해지면 암담할 따름이죠. 이러다간 학교가 지역사회의 중심은커녕 슬럼화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국과 미국도 학업성취도 또는 학생 모집 등 ‘경쟁’에서 우수한 학교에 더 많은 재원이 지원되는 방식의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은 2013년까지 중등교육자격시험(GCSE) 성적이 나쁜 학교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폐교 또는 흡수통합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대상은 전체 공립학교의 5분의 1인 670여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 위주 정책은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성열관 경희대 교수는 최근 교육학자 155명이 ‘일제식 학력고사’ 철회를 요구한 자리에서 “획일적 점수에 의한 외부 평가방식이 아니라 기초학력 미달학생과 취약계층 학생에 대해 다각도로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영·미도 실패한 ‘철 지난’ 정책을 수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밤 10시 서울 대치동 학원가 버스 정류장. 학원에서 공부를 끝낸 학생들이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창길기자>



학력 중시, ‘문제 푸는 기계’ 양산 가능성

21세기형 ‘다품종 소량생산’과 걸맞지 않은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의 평가 잣대로 학생과 학교를 평가할 경우 정부 재원으로 운영되는 일반적인 학교교육은 기계적인 문제풀이에 함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창의적인 교육은 고비용의 사립학교 또는 사교육 시스템이 제공할 수밖에 없다.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교과부 및 각 지자체마다 영재학급을 늘리고 있지만, 그에 필요한 시설이나 교사 연수는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총평”이라고 말했다.



“최근 KAIST에서 과학 잠재력이 있는 일반고생을 선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교사 1인당 학생수가 30명이 넘는 현실에서는 무리라고 봅니다. 교사 1인당 8명이 실험을 하는 것도 벅차거든요. 창의적인 교육을 제공하려면 그에 걸맞은 투자가 이뤄져야 하지만 공교육은 그렇게 못합니다. 영재학급 등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기초단계에 불과합니다.”



교육지옥, 학벌 사회



2010년부터 자율형사립고·기숙형 공립학교 등 엘리트 고교가 ‘3불’(고교등급제·본고사제·기여입학제 금지) 폐지와 맞물리면 초·중등교육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무엇보다 특목고·자사고에서 명문대로 이어지는 견고한 학벌통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2009학년도 서울대 진학 ‘톱10’ 고교 가운데 일반계 고교는 단 한 군데뿐이었다. 교육계에서는 “야구로 치면 특목·자사고는 ‘1부리그’이고 일반고는 ‘2부리그’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고교 평준화’는 이제 교육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질 운명이다.



이 같은 경쟁 시스템이 주는 긴장감 때문에 학부모들은 탈출을 꿈꾸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치솟기 전인 지난해 통계청 ‘사회통계조사’에서 학부모 절반이 자녀를 외국에 유학보내고 싶다고 응답했다. 경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교육 기회를 얻기 위해, 혹은 더 강력한 경쟁자가 되기 위해 짐싸고 나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에 거주하는 학부모 김향숙씨는 “고교 1학년이 된 아들의 학교생활을 보느라면, 돈만 있다면 짐싸들고 외국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낙오 막으려 혹은 경쟁력 강화 위해 조기 유학길로



“전인교육, 이런 건 입시가 닥친 학교현장에서 의미가 없어요. 과목당 25만원씩 하는 학원을 몇 개 보내, 하루에 6시간도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서 사교육으로 내몰리는 게 아이들 현실이더군요. 학원 보낸다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주도 학습능력만 잃어버리더라고요. 저처럼 아이들 인성교육을 고민하는 주변 학부모 몇몇은 자녀를 인도나 핀란드 등지로 조기유학을 보냈어요. 그렇게라도 아이를 지키고 싶은 것 아니겠어요. ‘3불’ 폐지 얘기가 나오는 마당에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답이 될지 암담할 뿐이죠.”



또다른 서울지역 학부모 이모씨는 3년 전 초등학교 5학년이던 자녀를 호주로 조기유학 보냈다.



“어차피 경쟁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영어가 중요해진 만큼 최소 3년 정도 해외 거주경험은 필수적이지 않겠어요. 게다가 최근에 정부가 외국인학교 입학요건을 5년 이상에서 3년 이상 외국 거주로 완화했잖아요. 국내 명문대에 진학한다면 좋고, 만약에 사정이 된다면 다시 외국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다고 봐요. 선택의 폭을 넓히는 거죠. 지금은 환율이 좀 올랐지만 한국 내에서 사교육 받을 비용이나 효과를 생각하면 차라리 외국 나가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경쟁의 내면화, 공동체 파괴



신자유주의 교육이 경쟁을 얻는다면, 잃는 것은 계급 이동이다. 현재 세계 중간 수준인 한국교육의 사회적 평등이 향후 세계 최하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영남대 김재춘 교수는 “중간 이하의 계층은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 상승의 희망이 없어지니까 스스로 교육을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며 “한국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은 60~70년대만 해도 가능했고, 90년대 들어 어려워졌지만 앞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를 인생 경쟁자로 인식



신자유주의 교육이 시장에 의존할수록 개인은 파편화되고, 사회적 연대는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교직 경력 19년차인 경기 시흥 장곡중학교 박현숙 교사는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는 말이 10년 전에 등장하면서부터 교실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91년 처음 발령받았을 때는 신자유주의 파도가 치기 전이었어요.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있었어요. 반 아이들과 생일잔치도 하고 학급회의도 하고 집단상담도 진행했죠.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급우를 경쟁자로 여기는 것 같고, 담임교사는 행정을 처리하는 사람에 불과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협동활동을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교직 10년차인 서울 동성고 김행수 교사도 같은 의견이다. “가장 많이 차이나는 게 동아리 활동이에요. 교직 입문때만 해도 학교마다 특색있는 동아리가 있었는데 2004년에는 지원자가 없었어요. 보이스카우트가 없어졌고 풍물패도 사라졌어요. 아이들이 공부에만 빠져 있기 때문이죠.”



시험 문제에만 있는 공동체



정규성 서강대 교육문화학과 교수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문화가 붕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논리가 강조되는 교육제도 속에서 그런 가치를 한 번도 배우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공동체 의식은 피상화돼서 내가 직접 체험하는 게 아닌 오로지 교과서와 시험문제에만 나오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학교에서의 기업 및 시장 논리 확대를 들 수 있다. 오는 4월부터 경제교육지원법이 시행되면 중·고교 경제교육에 친기업 내용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경제부는 2013년까지 95억원을 들여 경제교과서를 개정하고 교사들을 재교육할 방침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신자유주의 등 미국 보수주의 운동이 추구하는 핵심이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 집단에 해가 되는 정책을 뒤집는, 근본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인 목표”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학교교육에도 사회지배층의 이익을 재생산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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