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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부 - (8)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새로운 우상 : 규제 완화

박재현기자

김대중 정부는 1999년 1월 아파트 분양가 규제조치를 전면 해제했다. 전국의 모든 아파트의 분양가는 건설사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시중 여유자금을 주택시장에 흘러들게 해 수요를 늘려 경기부양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같은해 3월에는 수도권 분양권 전매 규제도 풀었다. 소형주택 의무건설비율, 재당첨 금지제한 기간도 사라졌다. 1가구 2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도 일시 면제했다.



정부는 이런 조치로 아파트 물량공급이 늘어나 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그해 여름부터 서울 강남과 분당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급등했다. 많은 지역에서 아파트 매매·전셋값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올랐다. 98년 이전 3.3㎡당 500만~600만원인 분양가는 2003년 1000만원(1129만원)을 넘어섰고, 매년 10% 안팎 올랐다. 지방에도 3.3㎡당 3000만원대 아파트가 등장했다. 분양가 상승은 주변집 값을 올렸고, 이는 다시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분양권 전매제한이 사라지면서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은 모델하우스로 몰렸다. 그러는 동안 평생 내집마련이 꿈이었던 서민들의 한숨은 깊어갔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시민단체 활동을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98년부터 여유시간을 활용해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그는 2000년 전업 활동가로 변신했다. 김 본부장은 건설회사에 근무했던 지식과 경험으로 분양가 거품 구조를 밝히고, 분양원가 공개 운동을 전개했다. 시민사회의 요구가 커지고 집값 폭등이 계속되자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1월부터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경기가 침체되자 이명박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이를 폐지하기로 했다.

신앙이 된 규제 완화

전국민을 신용불량자로 만들 뻔했던 김대중 정부의 카드사태 역시 규제완화가 부른 후폭풍이었다. 신용카드사에 대출업무를 허용하고, 현금서비스 비중 등의 제한이 풀리면서 카드사들은 길거리 카드모집에 나섰고 학생과 실업자들도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

한 대형 카드회사 관계자는 “금융기관도 수익을 쫓는 기업이기 때문에 고삐를 풀어놓으면 시장질서가 혼탁해지기 쉽다. 일정부분 감독과 통제가 필요하다”면서 “현금서비스 한도를 없앤 이후 무분별한 대출을 억제할 수 있는 보완장치가 뒤따라야 했다”고 말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규제완화는 이제 신앙이 됐다.”(세종대 김수현 교수) 그 이유는 뭘까. “공장의 신·증설이나 투자기회를 규제 때문에 놓치는 경우가 많다.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해 시장기능을 활성화시키고 기업간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은 사회전체적인 이익으로 돌아온다”(대한상의 규제개혁단 관계자)는 게 주요한 이유다. 특히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규제완화가 더욱 필요하다고 한다.

규제완화는 더 큰 규제완화를 초래





이런 탈규제 논리에 따르면, 규제완화의 결과로 기업 활동이 증진되고 투자가 일어나야 한다. 기업에 대한 각종 혜택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가해진다면 분명 눈에 띄는 성과가 나와야 한다. 기업도시 정책을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2004년 말 노무현 정부의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은 기자실에 들러 이례적인 조치를 발표했다. 강 장관은 “기업도시는 기업이 주축이 되는 사업인 만큼 기업도시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할 때 기업의 실무자들을 대거 참여시켜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기업도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정부가 법안 제정 과정에 기업 관계자들을 참여시키기로 한 것은 처음이었다. 기업도시는 계속 하락하고 있는 국가잠재성장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도입됐다. 전경련은 지역 개발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이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센터와 주거 등을 종합적으로 건설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규제완화와 세제지원책을 내놓는 등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일본 도요타시 등 해외 성공사례가 대대적으로 홍보됐다.

이를 위해 정부의 고유한 토지수용권을 민간 기업에도 허용하는 등 기업도시에 쏟아붓는 열정은 대단했다. 토지수용권이란 개인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공공의 목적을 위해 재산을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민간이 이를 행사하는 것은 특권 중의 특권이었다. 이런 특혜 속에 2005년 7월 충남 태안 등 전국 6개 지역이 기업도시 시범지구로 지정됐지만, 현재까지 기업도시 건설은 지지부진하다. 무주 기업도시는 사업자인 대한전선이 투자연기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고, 전남 영암·해남기업도시도 개발계획 승인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전경련은 “기업도시 인프라에 대한 정부지원 미흡과 개발비용 증가 때문에 기업도시 추진이 지지부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공공성을 해칠 정도의 무리한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다”며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이 사례는 정부의 규제완화와 지원이 반드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규제완화는 더 큰 규제완화를 요구한다는 악순환의 논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규제완화는 善? 좋은 규제가 있어야

기업이 원하는 규제 완화는 어느 수준일까. 이명박 정부 출범 두 달 뒤인 지난해 4월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지식경제부에 규제개혁 과제 267건을 제출했다. 지식경제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퇴직금과 적극적 고용조치 제도를 없애고, 고령자와 장애인 고용의무 및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 주였다. 산재유해요인 조사, 사업주 벌칙조항 완화 등 산업재해를 막는 장치도 풀 것으로 요구했다. 육아휴직에 대한 거부권 및 직장 보육시설 설치 의무 완화도 요구했다.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벌칙 규정도 풀라고 했다.

만일 재계가 요구한 규제완화가 모두 이뤄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미 외환위기 이후 기업규제 완화라는 명분으로 각종 산업안전규정을 완화시킨 바 있다. 그 결과 98년 0.68%까지 떨어졌던 산업재해율이 2007년 0.72%로 다시 증가했다. 기업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겠다는 발상과 다르지 않다. 증권선물거래소 분석결과 546개 상장기업이 내부에 쌓아둔 현금성 자산은 2007년 말 현재 약 63조원으로 1년 전보다 20%나 늘어났다. 이 중 10대 그룹이 쌓아둔 돈이 33조5000억원으로 절반을 넘는다. 500명 이상 기업 소속 노동자 수는 93년 210만명에서 2005년 131만명으로 줄어든 반면, 정규직 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는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56% 규모로 커졌다. 대기업의 투자가 고용 창출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행 조사국 한성훈 과장은 “제조업의 경우 규제완화의 효과가 서비스업보다는 높지 않다”면서 “제조업의 효율성은 연구개발(R&D)이 크게 좌우한다”고 말했다. 규제의 특성과 산업별 모형을 토대로 ‘규제완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를 낸 그는 규제를 10%만 완화해도 0.3%포인트의 총요소생산성이 증대하는 등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규제는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규제는 환경·노동 등 사회적 목적 달성을 위한 ‘사회적 규제’, 경제활동의 진입과 가격 등에 개입하는 ‘경제적 규제’, 행정일반을 다룬 ‘행정적 규제’로 나뉩니다. 규제의 강도는 사회적 규제보다는 경제적 규제가 훨씬 셉니다. 또 사회적 규제는 기업의 편의 때문에 훼손될 수 있는 소비자나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바람직한 규제’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규제완화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적 규제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규제완화의 혜택은 부자들에게만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규제 완화뿐 아니라 사회적 규제 완화까지 전방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거나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위한 금산분리 완화도 추진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폐지,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의 투기지역 해제, 재건축시 소형·임대주택 의무건설 완화 등 ‘부동산 핵심 3대 규제’도 조만간 폐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규제는 투기를 막고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방패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경기활성화의 장애물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규제완화의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서민이 아니라 부동산 부자와 건설업체들이 독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추진한 종합부동산세와 고가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 등의 혜택도 서민들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경실련 윤순철 시민감시국장)

94년 그룹의 신격호 회장 구상으로 추진됐으나 국방부 등의 반대로 무산됐던 ‘제2 롯데월드’ 신축 허가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물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수도권 차원에서는 성장의 문제이지만, 지방에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수혜자와 피해자의 격차는 심각하다.

“수도권 규제는 어느 정부에서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위기가 확산되는 시기여서 기업들의 투자가 급속도로 냉각된 상태였기 때문에 규제완화가 힘이 될 것이라고 봤죠. 특히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5+2 광역경제권’이란 균형발전의 틀을 제시했고, 지난해 7월과 9월 연이어 지방발전 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에 10월30일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가 발표되더라도 충분히 지방의 이해와 설득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지방의 반발은 예상 외로 강했습니다. 이에 정부도 새로운 지방발전 구상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국토해양부 관계자)

신자유주의 성공 위해서도 규제는 필요

본래 법률과 제도를 통한 규제는 시장의 자율에 맡길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독·과점 현상을 막고, 소수만 혜택을 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은 거대한 독과점 재벌의 사익을 늘리기 위해 진입장벽을 치는 수단으로 규제를 이용했다. 행정당국의 편의주의적 발상에 따른 이런 규제는 당연히 비효율성을 낳았다. 규제개혁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문들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런 권위주의 정권의 잘못된 규제를 빌미로 모든 규제를 악으로 치부하며 ‘무조건 규제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일정한 규제와 룰을 만들어주는 게 오히려 시장의 안정을 높인다”고 말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을 실현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아이러니하지만 규제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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