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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30분 배달제의 부활

경향 신문 2021. 4. 20. 09:32

10년 전 사라진 30분 배달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쿠팡의 치타배달과 배민의 번쩍 배달이다. 쿠팡이츠는 라이더가 여러 집을 묶어서 배달하는 관행을 깨고, 한 집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기를 느낀 배민도 한 집 배달로 맞서고 있다. 빠른 배달 경쟁으로 흔히 라이더의 사고 위험이 높아질 거라 우려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과거의 30분 배달은 직접고용한 노동자에게 고용주가 빠른 배달을 강요하는 방식이었다. 사장이 노동자에게 주휴수당, 4대보험, 연차, 퇴직금을 제공하는 대신 노동자는 사장의 지시를 준수했다. 기업은 임금은 최저로 주면서 한 사람이 수행해야 할 배달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윤을 챙겼다. 종속과 보호, 임금과 이윤을 교환하는 형태다.

쿠팡과 배민은 노동자의 숫자를 늘리는 방법을 택했다. 한 노동자가 수행해야 할 배달량 자체를 줄이고 한 건만 배달하게 한다. 이는 알고리즘 기술이 아니라 오롯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배달라이더를 개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시급을 보장하는 대신 건당으로 수당을 지급하고, 기업이 노동자에게 써야 할 비용이 없으니 라이더를 데이터 형태로 무한하게 보유할 수 있다. 배달기업은 자신 덕분에 노동자들이 과거 악덕업주로부터 ‘해방’됐다고 주장하지만, 기업이야말로 과거 노동법의 책임으로부터 ‘해방’됐다.

배달기업이 무한한 노동자를 소유할 수 있는 또 다른 비법은 국가의 방치다. 쿠팡이츠는 라이더가 유상운송보험이라 불리는 영업용 보험에 가입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쿠팡이츠 라이더와 사고가 난다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배민도 쿠팡이츠 핑계를 대면서 라이더 보험 조건을 낮췄다. 상대방이 다쳤을 때, 무한한 보상을 보장하는 대인2까지 가입해야 일할 수 있었던 것을 보상액한도제한이 있는 대인1만 들어도 일할 수 있도록 바꿨다. 자동차 1종 보통 면허만 있으면 이륜차를 몰 수 있고, 별도의 영업용 자격이나 보험 확인도 없이 전동퀵보드, 전기자전거, 자동차 등을 이용해 일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빠른 배달로 잠깐 기분이 좋겠지만, 배달사고로 피해자가 되면 인적·물적 손해를 감당해야 한다. 배달 일을 하는 라이더도 감당할 수 없는 사고를 일으킨다면 회생이 불가능한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 무한히 늘어나는 노동자들 때문에 노동자의 협상력은 떨어지고, 소득보장도 없어 생존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배달기업은 이를 ‘혁신’으로 포장한다. 얼마 전 마켓컬리는 일용직 노동자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됐지만, TV에는 버젓이 CEO가 출연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마켓컬리는 문제를 불성실한 일용직 노동자 탓으로 돌렸지만, 일용직을 고용하면서 성실한 노동자를 원하는 것이야말로 후진적이다. 노동법 없던 초기자본주의 자본가와 똑같은 일을 하면서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다. 산업화 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법이 탄생했듯, 배달산업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규칙이 필요하다. 국회가 국민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서 치타와 번개보다 빠르게 배달해주길 바란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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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사)전국배달라이더협회

    2021.04.2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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