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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4·27을 다시 생각한다

경향 신문 2021. 4. 26. 10:15

4·27 판문점선언이 이뤄진 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이제는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흐릿해졌지만 3년 전 ‘평화의 봄’이 오기 전,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놓여있었다. 북한은 계속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위기를 조성하고 있었고, 주변국들도 북한에 대한 압박을 높여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를 언급했고, 2017년 4월 위기설, 9월 위기설이 돌았다.

그 속에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베를린 구상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발표했다. 베를린 구상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인위적 통일 배제, 한반도 비핵화 추구, 비정치적 교류 지속 등 5대 대북정책 기조를 담았다. 그 후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시작으로 남북관계의 복원 과정이 시작되었다. 2018년 4월27일,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우리 땅을 밟았고 한반도의 봄이 다가왔다. 남북관계가 전쟁위기에서 대화와 협력으로 극적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남북 두 정상이 만들어갈 새로운 미래를 보았다. 이후 판문점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안타깝게도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판문점선언으로 이루어진 평화는 완성되지 못한 채 아직 진행형이다. 2017년과 같은 전쟁 위기나 군사적 충돌의 위협 가능성은 낮아졌다. 2018년 4·27 정상회담 직전인 4월21일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중지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모라토리엄은 유지되고 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노력은 70년간 쌓여온 남북 간의 군사적 대결구도를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분쟁과 대립의 상징이었던 비무장지대도 평화의 공간으로 조금씩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국민들의 삶에 평화가 일상화되는 ‘전쟁 없는 한반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판문점선언은 우리 국민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뿐만 아니라 판문점선언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남북관계 진전이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촉진한 사례를 만들었다. 북·미 정상 간 싱가포르 합의는 ‘판문점선언을 확인한다’고 명확하게 적시함으로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선순환의 모범사례를 만들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남과 북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합의한 것 자체가 역사적인 경험이었다.

북한은 지난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근본 문제로 긴장고조 행위 중단과 4·27 남북정상합의서 이행 등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는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전쟁불용, 상호 안전보장, 공동번영’이라는 남북관계의 3대 원칙과 함께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화를 제시하였고,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및 남북생명안전공동체 제안 등 다방면으로 남북협력의 수준과 범위를 넓혀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동안 북한에 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서해상 우리 국민 사망 사건 등 남북관계의 악재가 있었지만, 남북 모두 한반도 평화의 근간을 흔드는 군사적 긴장고조로 가지 않도록 정세를 관리해 나가고 있다.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유럽도 세계대전의 포화에서 벗어나서 평화를 제도화하는 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내와 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했다. 남북 간에 70년간 쌓인 불신을 걷어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4·27을 다시 생각하는 건 그런 연유에서다. 판문점선언은 되돌릴 수 없는 한반도 평화의 토대와 역사적 전기를 만들었다. 이 토대에서 우리는 다시 출발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일희일비하지 않고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일관되게 해나가야 한다. 가장 시급한 보건의료협력부터 시작해 민생협력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남북관계를 차근차근 되살려 가기를 희망한다. 북한도 3년 전 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화답해 나오길 기대한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판문점선언을 국회에서 비준하는 등 합의 이행 의지를 굳건히 하고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4·27 3주년이 남북관계 복원의 재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북측의 호응으로 끊어진 남북연락 채널이 복원되고, 또 코로나19를 감안한 남북 간 화상회의 또는 문서교환 방식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남북 간 신뢰증진은 그리 먼 훗날의 일이 아닐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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