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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다시 남쪽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해 봄, 기차 안에서 바라본 노란 산수유는 눈물이었다. 봄볕으로 반짝이는 푸른 강물도, 새순이 돋아나는 여린 들판도 아려 봄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기차 안에서 바라본 봄은 여전했다. 봄꽃이 피어나고, 들판은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그렇지만 7년 전처럼 질금대는 눈물을 남모르게 훔치지 않았다. 이렇게 눈물은 멈추고, 아픔은 옅어지고, 기억은 지워지겠구나 싶었다.

이제는 진도항으로 이름이 바뀌어서 옛 팽목항이 되어버린 항구로 가는 길에는 노란 유채꽃 들판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농가에 도움이 되고 봄날 피어나는 노란 꽃이 섬을 찾는 이들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겠냐면서 유채 농사를 짓자고 한 이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저 봄볕이 부서진 듯 빛나는 노란 꽃만 넋을 잃고 바라봤다.

눈부신 봄은 항구 끝까지 닿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유난스러운 항구의 한쪽은 배후지 공사가 한창이라서 깎이고 패어 누런 흙먼지가 날렸고, 자갈돌이 깔린 빈터에 서 있는 세월호 기록관 컨테이너 둘레에 솟아난 풀은 엉성했다. 드센 바람에 너울대는 바다를 향해 뻗어있는 방파제에는 유채꽃 대신 나달나달해진 노란 끈이 휘날리고 있었다. 방파제에는 7년 전 그 봄이 남아 있었다. 방파제 한쪽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4000여개의 타일에는 눈물과 한숨과 아픔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미안함이었다. 그랬다.

그해 봄 이 땅에 사는 어른들은 모두 미안해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딸에게 라면을 끓여주던 한 아버지는 라면을 끓여줄 수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미안해 눈물이 났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만 봐도 미안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 슬픔이, 미안함이 세상을 바꾸기도 했다. 한 철학자는 말했다.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는 투쟁은 2016년 11월의 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근원이라고. 그런데 세상은 진짜 바뀐 것일까?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데, 우리의 슬픔은 혁명을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슬픔과 미안함으로 참회하면서 아이들에게 좀 더 안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던 어른들은 자신의 외침을 실천했을까?

이 질문에 7년 전 봄 교복을 입었던, 이제는 20대가 된 이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20대는 사회가 여전히 불공정하며, 안정된 미래를 보장하기는커녕 자신들의 노력을 소모할 뿐이라고 여긴다. 자신들을 눈물겹게 여겼던, 함께 촛불을 들며 세상을 바꿔보겠다던 어른들은 없다. 눈물은 멈추고, 슬픔은 잊히고, 미안함은 사라진 어른들은 도리어 20대의 질책을 노여워한다. 사실 그 노여움은 무기력함에서 비롯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어른들도 세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불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공정하게 바꿀지,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공정은 연대에서 비롯된다는 그럴싸한 말은 난무하지만, 연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다 모르겠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목포 신항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배가 말해준다. 붉게 녹슬고 있는 그 배는 과거의 아픔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단단한 강철을 부식시키고 있는 붉은 녹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그것이 사물이든 신념이든 가치관이든 닦아내고 바꾸지 않는다면 녹슬고 부식해 결국 침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항해가 멈추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문제를 찾아내고, 바꾸고 변화시켜야 한다.

그 봄에서 7년이 지났다. 이제는 잘 모르는 어른들이 20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슬픔이 세상을 바꿨다고 자만하지 말고, 그 봄을 기억하면서 다시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20대와 손을 잡고 그들과 함께.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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