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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등 세계를 휩쓰는 한류에 또 하나의 아이템이 합류했다. 전염병 대응의 모범으로 떠오른 한국식 방역. 거기에는 재빨리 ‘K방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검사, 격리, 치료의 노하우를 구하는 요청이 쇄도한다. 진단키트, 방호복과 글러브 등 국산 의료용품의 수출도 급격히 늘고 있다.

이 모두가 사태 수습에 앞장선 영웅들 덕이다. 선제적으로 대응한 질병관리본부, 앞을 내다보고 미리 진단키트를 개발한 의료벤처, 환자들의 치료를 맡은 우수한 의료진, 살인적 초과노동을 견딘 헌신적 공무원들, 수습의 사령탑 역할을 한 정부. 드높은 시민의식으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히 실천한 국민들. 모두 박수를 받을 만하다.

우리가 신규 확진자 수 0에 접근해 가는 지금, 그동안 우리가 ‘선진국’이라 불러왔던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매일 엄청난 수의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방호복이 떨어져 대신 쓰레기봉투를 뒤집어 쓰고 치료에 임하는 그곳 의료진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선진국이라기보다는 ‘제3세계’라 불리던 개발도상국의 풍경을 보는 듯했다. 

서구인도 마스크와 생활용품 사재기를 한다. 아시아인을 향해서는 인종주의 폭력을 가한다. 그런가 하면 사육제 전에 한껏 술과 고기를 즐겼던 중세인들처럼 봉쇄령 시행 전날 집단으로 모여 축하 파티를 연다. 그들이 자랑하던 ‘합리성’은 다 어디로 갔는가? 당연히 이제 ‘서구 콤플렉스’를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방역 성공에 대한 자부심이 ‘국뽕’으로 흐르는 조짐도 보인다. 누구보다 ‘열등하다’ 혹은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실은 병적 현상이다. 그 감정만 버리면 그저 남이 우리에게 배울 수 있는 점과 우리가 남에게 배워야 할 점이 남을 뿐이다. 일본이 우리의 성공에서 배우기를 애써 사양하는 것은 그 부정적 감정과 관련이 있을 게다.


모범으로 떠오른 한국 방역 

세계 휩쓴 한류에 ‘하나 더’ 

자부심 왜곡되면 ‘국뽕’으로

‘K방역’에서 얻은 자신감

‘안전한 나라 만들기’ 승화를


한편 우리의 성취에 대한 냉정한 시각도 필요하다. 아직 이유는 모르지만 감염폭발은 주로 서구에서 일어났고, 아시아에서는 감염이 비교적 억제되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이 서구보다 나은 시스템을 가진 것은 아닐 게다. 고로 우리의 성과는 서구가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야 한다. 

또 한국에서 가능한 것이 모든 곳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령 감염경로 추적에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것은 서구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이를 ‘개인’의 인권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과도한 정보 제공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사례가 있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할 게다. 

프랑스의 어느 매체에 한국이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감시국가라며 비난하는 칼럼이 실린 적이 있다. 개인정보의 공개를 필요한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감시자인 국가를 감시하는 시스템만 있다면, 디지털 시대에 굳이 정보통신기술의 이용을 포기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만 우리 사회가 ‘개인’의 권리문제에 다소 소홀했던 것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사재기가 없었던 것은 유럽에 없는 택배문화 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감염폭발로 인한 도시 봉쇄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스크의 경우 우리도 ‘대란’을 겪었다. 인종주의 차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중국인과 중국 국적 동포에 대한 노골적 혐오가 있었고, 지식인들이 나서서 대구지역에 차별 발언을 퍼붓는 일까지 있었다. 

이 모든 유보에도 불구하고 K방역의 성취는 놀라운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스와 메르스의 경험에서 뭔가를 배웠고, 그로써 사회를 더 낫게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이 소중한 성과를 ‘국뽕’의 재료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아직 우리는 더 배워야 한다. 제천 화재를 겪고도 이천 화재를 막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당국에서 5~6차례 위험을 경고했다지만 재해를 막지 못했다.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방역에서 얻은 자신감을 이제 다른 분야로 확장시켜야 한다. 여전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 방역에 들인 투자와 관심과 협력의 절반만 들여도,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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