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상처는 아물어도 상흔은 그대로 남는다. 슬픔은 무뎌졌지만, 그렇다고 지난 시간을 되돌린 순 없다. 2017년 4월18일, 입사 1주년을 맞지 못한 채 떠난 친형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대기업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때의 4월은 달큰한 벚꽃 향보다 매정한 인간의 찬 내로 그득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아린 시간이다. 각자의 슬픔과 세월호의 기억이 뒤얽혀 봄의 기운을 잠식한다. 4월, 바다, 수학여행, 노란 리본 그리고 나의 형. 평범한 단어들이 더는 평범하지 않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4월을 슬프게 기억한다.

다만, 아픔을 기억하는 방법이 서툴렀다. 서로에게 출구를 찾아주지 못했다. 세월호를 비롯한 산재·재난 등의 참사, 각종 착취와 폭력의 문제가 서서히 잊히는 동안 비극의 본질을 해결하지도, 상처받은 사람이 일상으로 복귀하지도 못했다. 그것만이겠는가. 하루에 노동자 7명이 일터의 사고로 퇴근길에 오르지 못한다. 자산에 의한, 지구에 대한, 위력을 이용한 폭력까지. 아무것도 출구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7년이 지나도, 촛불을 들어도, 유가족들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만 한다. 심지어 올해 4월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지키지도 책임지지도 못한 정치세력이 거짓말처럼 돌아오는 분기점이 되었다. 12년 전 자신의 임기 때 벌어진 용산참사의 비극이 ‘철거민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유가족과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민들의 바람을 대변하겠다며 청와대, 국회, 정부에 안착한 이들이 비위를 일삼고, 그때와 같이 울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되었다.

다시 7년 전 4월로 돌아가 본다.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존중과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세월호의 유가족을 비롯한 우리가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억’을 더욱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했다. 천천히 나아가더라도 상처를 먼저 돌아보았어야 했다. 서로를 지키기 위한 다짐을 쉽게 위임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행히도 4월의 ‘기억’은 우리가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나의 형은 그 때의 기자회견 이후 따뜻한 봄의 시작과 함께 명예를 회복했으며, 온 국민들은 힘을 모아 무책임했던 대통령을 심판했다. 다시 찾아온 잔인한 계절을 바라보며 무기력해지지 않겠다. 4월의 기억을 통해서 다시 일어나야겠다. 지겨워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젠 바다가, 4월의 꽃내음이 우리의 죄책감이 아니길 바라본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위선과 무능은 철저히 감시하고 도려내면서도, 비극의 반복을 멈추고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손을 다시 잡아보겠다. 다가올 봄을 기꺼이 온기로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오늘을 힘주어 살아보겠다.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