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재수 없게 땀띠와 감기몸살이 함께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허리께에서 시작된 수포와 통증이 온몸으로 번지고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며칠 아침을 울면서 출근했고, 퇴근해서는 울면서 잠들었다. 그제야 내가 대상포진에 걸렸음을 알았다. 병원에서는 한 달을 먹고 자기만 하며 쉬라 권고했지만 회사에 병가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 일터에 출근한 지 한 달 만의 일이었고, 나는 인사고과에 따라 3개월마다 재계약되는 파견직 노동자였다.

제때 쉬지 못해 후유증으로 신경통이 남았다. 자칫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 싶은 불안함에 아파도 출근을 선택해야만 했던 것의 대가였다. 이런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개인에게 아픔을 감내하는 것만이 아닌 죽음을 감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모군과 컨베이어벨트를 청소하던 김용균씨가 죽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던 위험한 작업장은 동시에 정규직 전환이란 희망의 갈림길이었다.

겪어보니 알겠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 일하고 덜 쉰다. 계약 연장은 물론 그 끝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을 참는다. 일이 연장되거나 업무의 강도가 높아져도 이를 거절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이 없으니 결국 해야만 한다. 4대 보험 적용이 되지 않거나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참아야만 한다.

특수노동으로 분류돼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프리랜서 노동자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하지 않으면 쉴 수 있어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언제 수입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통제할 수 없어 자신을 끝까지 소모시킨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니 노동법의 도움을 받기 어렵고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용 형태가 불안정할수록, 노동 환경의 질이 낮을수록,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아프다. 김승섭, 박주영, 이나영, 윤서현, 최보경이 2016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고용 형태와 건강의 연관성에 대한 37편의 연구 중 35편에서 ‘정규직 노동자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이 유의미하게 나빠짐’이 드러났다. 이들은 음주나 흡연, 사망과 사고 등으로 몸이 아프거나 간접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수면장애나 만성질환, 우울증 등을 더 쉽게 겪었다.

나아가 이러한 노동 양극화는 건강 양극화로 이어진다. 임금은 적은데 생활비는 많이 들면 대개 식비부터 줄여 영양불균형이 오기 쉽다. 노동 시간이 길어지면 병원에 갈 시간을 내기 어려워지거나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등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위험의 외주화’와 같이 안전 관리가 소홀해진 작업 환경에 노출되면 사망률이나 사고율이 상승한다.

건강이란 실존이자 존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과도 같기에 마냥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 직접고용·정규직화와 동시에 드러나지 않은 노동과 새로운 노동에 대한 인정이 시급하다. 4대 보험의 문턱을 낮추고 혹은 작업 환경의 관리·감독을 강화해 국가 차원의 다면적 제도 마련과 개선이 필요하다.

고용 형태가 우리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면, 삶의 형태가 우리 그림자를 결정하지 않겠는가. 먼저 떠난 그들의 그림자를 뒤따르는 우리를 보아라. 어떤 노동과 어떤 삶을 좇아가고 있는 것 같은가. 이제는 그만 아프고,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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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