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 60여년 단절의 역사는 기적처럼 새로운 자연을 태동시켰다. 금단의 땅은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보전, 복원되었다. 경기도 파주부터 강원도 철원 고성까지 248㎞를 가르는 비무장지대(DMZ)는 한반도에서 단절되지 않은 유일한 동서 생태축이다. 서부전선의 사천강·사미천·임진강은 습지 생태계의 진수를 보여준다. 중부전선의 너른 평강고원과 철원평야, 한탄강 습지는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며 멸종위기 두루미의 최대 월동지다. 한북정맥 삼천봉과 적근산,  백두대간 고성재와 삼재령, 고성 건봉산 일대의 동부전선에는 반달가슴곰, 산양, 사향노루가 살고 있다. 국립생태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5929종, 멸종위기 야생생물 101종이 남한 국토 면적의 0.6%에 불과한 비무장지대,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 전쟁과 분단, 냉전의 비극이 역설적으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생명에게 유례없는 낙원을 선사했다. 

지난 1년간, 우리는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향한 상당한 진전을 지켜봤다. 상호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며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겠다는 남북 정상의 합의에 박수를 보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하며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를 일부 철수했고, 한강 하구 공동 이용을 위한 수로 조사를 추진했으며 남북 공동 유해 발굴사업을 진행했다. 파주, 철원, 고성 지역의 비무장지대 평화둘레길도 발표됐다. 경의선과 동해선을 복원, 현대화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도 정상화할 것이다. 서해경제공동특구와 동해관광공동특구도 남북 합의에 따라 설치될 것이다. 경제적 번영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로 나아가겠다는 원대한 그림이다. 

그런데 작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무장지대 일원의 개발 압력은 폭발적이다. 정부의 무분별한 개발계획이 평화와 안보의 이름으로 추진되었다. 비무장지대 생태·평화안보 관광지구 개발계획,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 한반도 생태평화관광벨트, 비무장지대 평화둘레길 조성, 문산~개성 고속도로 등 행정부 구상은 ‘생태보전의 원칙’ 없이 중구난방이다. 생명의 땅, 비무장지대가 들썩이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이 합의한 ‘한반도 번영과 통일의 평화지대’도 마찬가지다. 경제, 번영, 통일을 명분으로 사업을 밀어붙이지만 ‘생태보전의 원칙’은 없다. 비무장지대 생태·평화 가치에 입각한 범정부 부처의 일관적인 지휘체계도 없다. 통일부와 국방부 주도의 남북 협력사업은 초기부터 공론화되거나 공개되지 않는다. 2006년 수립된 환경부 남북 경제협력 환경 가이드라인은 여태껏 무용지물이다. 평화는 있을지언정 생태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의 공간’으로서 비무장지대는 어떠해야 할까. 지금, ‘평화지대’로서 비무장지대에 필요한 것은 내부 탐방이나 관광이 아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와 번영의 가치도 아니다. 시급히 난개발을 억제할 남북협력 관련 환경 가이드라인을 만들자. 비무장지대 보전을 위한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자. 남북 공동 생태조사를 제안해 세계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밝히고 근현대사의 문화유산을 발굴, 보전하자. 남북이 합의한 협력사업 이외의 계획은 멈추고 범정부 차원의 비무장지대 보전체계를 구축하자. 전쟁의 역사를 대자연으로 치유하는 곳. 비무장지대는 한민족이 인류에게 선사하는 미래의 세계유산이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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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