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인식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종종 있다. 친족 성폭력의 경우가 그렇다. 특히 아버지가 딸을 강간한 사건에 대해 얘기하면 백이면 백 “어떻게 아버지가 그럴 수 있나, 완전 쓰레기다”라고 반응한다.

그런데 이런 인식에는 함정이 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가해자는 자신의 일상 범주 안에 존재하는 ‘누구’일 수 없다. 나의 상식과 일상은 연결될 수밖에 없기에 가해자는 나의 일상 범주 밖 어떤 곳에 존재하는 ‘괴물’로 이미지화된다. 그래서 실제로 친족 성폭력 피해 가족들은 피해 자체를 믿지 못하고 부인하거나 피해 아동이 틀렸다고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친족 성폭력 가해자는 비정상적인 사고구조 또는 심각한 정신적 결함을 가진 ‘괴물’인데, 자신과 일상을 함께한 ‘멀쩡한’ 남편·아들·동생이라는 사실은 충격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다수의 친족 성폭력 가해자들이 ‘평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근면한 근로자이며 다른 범죄기록이 없는 모범적인 사회인’이라는 것이다.

수행비서를 위력으로 성폭행한 혐의 등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모든 성폭력에는 동일한 ‘가해자상=나의 상식 밖 괴물’이 존재한다. 그래서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이었다. 유력한 대권후보이며 인지도 높은 스마트한 정치인은 나의 인식체계에 있는 성폭력 가해자와 일치하지 않는다. 인식체계에 혼란이 온다. 이런 와중에 재판이 집중심리로 진행되고 있고 일부 재판과정이 공개되면서 ‘여론’재판이 진행 중이다(사건에 대한 높은 관심 때문에 발생할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우려해 검사 측에서는 재판의 전 과정에 대한 비공개를 요청했으나 피해자 측 증인심문에 대해서만 비공개하기로 결정됐다). 언론은 공개된 피고인 측 주장을 선정적으로 그대로 퍼나르며 2차 피해를 양산했고, 특히 피고인 부인의 공개 증언 보도는 그 정점에 있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상식’ ‘통념’에 호소하는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 익숙한 통념은 ‘피해자 유발론’이다. ‘늦게 다녀서, 짧은 옷을 입어서, 먼저 꼬리를 쳐서, 좋아서 했으면서 나중에 딴소리’. 성폭력 피해자보다는 연정을 품었다가 배신당해 복수한다는 익숙한 드라마 서사가 오히려 거부감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성폭력 ‘가해자상’과 ‘피해자상’에 맞지 않는 존재들을 이해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인으로 출석한 피고인 부인은 정확하게 사람들의 이 지점을 건드렸다. ‘공식적인 배우자’의 위치와 ‘그녀의 촉·느낌’에 무게를 싣고 사람들의 ‘통념’을 이용해 ‘상사와 부하 사이’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남녀 사이’, 불륜의 프레임을 씌웠다. 불편하지만 허용 가능한 상식의 범주로.

그러나 주목해야 할 진실이 있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의 절반은 1년 미만의 직원에게 일어난다. 부정, 인정, 합의에 의한, 연정의 서사는 성폭력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법적 대응 전략이다. 가해자 가족은 친족 성폭력 피해 가족과 유사한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 비슷한 대응전략을 사용한다. 모든 면에서 다른 성폭력 사건의 전형과 닮아 있다.

마지막으로 명확한 진실은 연인·부부 사이에도 데이트 강간, 부부 강간은 존재한다는 점이고 피고인은 스스로 주장하는 ‘합의된 성관계’에 대해 어떤 직접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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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