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네 가지 중점과제를 발표했다. 갑을관계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행태 개선과 구조적 문제 완화, 대기업집단의 일감몰아주기 시정,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한 혁신 생태계 조성, 소비자 안전 및 정보 접근권 강화와 소비자 피해 최소화이다. 모두 필요한 정책이지만,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와 황제경영 및 불공정행위 근절을 위한 근본적 제도 개선책이 빠져 있다. 발표한 내용으로 본다면, 제도 개선보다는 행위 규제와 행정 제재 쪽에 중점을 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인터뷰를 통해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도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전부개정안은 이미 지주회사 지분율 요건과 같은 출자 규제, 순환출자, 전속고발권 등 재벌정책 전반에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우선 전속고발권은 전면폐지가 아니고, 경성담합에 대해서만 폐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순환출자는 완전 해소가 아니라, 신규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에 지정되는 집단에 대해서만 기존 의결권을 제한하는 수준이다. 지주회사 규제 역시 신규 설립 또는 전환 지주회사에 대해서만 지분율 요건을 적용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3대 경제정책의 핵심인 공정경제 사령탑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1기 공정거래위원회의 성과는 부진했다. 갑을 문제 개선 노력과 실효성 없는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내놓은 것이 전부였다. 유선주 전 심판관리관의 공익제보에서 나왔듯이, 대기업 봐주기와 가습기 살균제 은폐 의혹 등으로 신뢰도 크게 훼손되었다. 당정이 혁신성장이란 명목하에 재벌의 숙원사업인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훼손과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제동도 걸지 못했다. 

조 신임 위원장은 전임 위원장이 하던 일을 이어가겠다는 수준으로 임해선 안된다.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실효성 있게 수정하고, 취임사에서도 강조한 일감몰아주기 방지의 경우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한 만큼, 공정거래위 권한으로 속히 추진해야 한다. 기술 탈취 및 불공정거래 행위를 근절해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징벌배상제와 디스커버리 제도도 즉각 도입해야 한다. 황제경영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차등의결권 도입 추진도 막아야 한다. 이를 통해 실추된 공정거래위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

지난 8월29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횡령, 재산 국외도피 등의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항소심과는 달리, 말 구입비용과 영재스포츠센터 지원금액을 유죄로 본 파기환송 결정이었다. 재벌이라는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의 불법 유착이자 국정농단을 단죄한 의미있고도 당연한 판결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재벌개혁 불씨가 조금은 남아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만큼, 개혁을 위한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 여야의 정쟁으로 정기국회가 제대로 개최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국회를 통한 법제도 개선도 당분간 담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의 개혁의지가 확고하다면, 국회를 설득하든 정부부처 간 협의를 통해서든 어느 정도 성과는 낼 수 있으리라 본다. 재벌들의 셀프개혁을 주문하던 전임 위원장과는 달리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개혁을 위해 적극 나서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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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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