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서 발언권을 얻은 의원들의 정보를 검색해봤다. 앉은 자리는 다르지만 대부분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 학교, 그 과를 나왔나 싶어 헛웃음까지 났다. 어떤 사람은 후보자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정책결정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모두 50대 아저씨들 아닌가. 과연 저곳에 지금 청년의 박탈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있을까. 분노를 넘어 ‘어차피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냉소해버리는 2030세대의 쓴웃음에 가슴 아파할 사람은 있을까. 

조국 후보자의 딸이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손가락질할 사람이 있을까. 노력도 안 했는데 부모의 특권만으로 탄탄대로를 걷는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대학생 시절 오랜만에 걸려온 작은아빠의 “뭐 필요한 거 없냐”는 전화에, “시간이오”라고 답했던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만큼 열심히 살았더라. 맞다. 우리 세대는 다 그렇게 10대 후반을, 20대 초반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다. 그러나 달리는 트랙의 높이가 달랐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와 같은 인맥, 정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력에도 질이 있다. 같은 노력을 해도 도착지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층위의 시각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글을 썼고, 누군가는 집회에 참여해 울분을 토했다.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분노는 당연하다. 공정한 줄 알았던 개인에 대한 실망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몇주간 내가 가장 크게 박탈감을 느꼈던 지점은 그 분노와 실망에 대한 누군가의 냉소였다. 그럴 줄 몰랐냐거나, 합법적이니 문제는 없다고, 그러니 본질을 호도하지 말라거나.

그런 분들에게 진정 ‘청년’을 알고 있냐고 묻고 싶다. 청년문제란 무엇인지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왔는데, 이러니 일자리 대책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청년문제는 구조적 불평등의 현상이다. 너무 복합적이어서 한쪽만 해결해선 해소되지 않는다. 혹자는 그걸 ‘계급사회의 고착화’라고도 한다. 후보자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란 말로 가려졌지만, 실상은 이 사회가 쌓아올린 불평등이다. 

박탈감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사법개혁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 기억은 혹시 없으신지. 정치적 대의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수많은 정체성을 떠올린다. 다수가 되지 못해 다음으로 미뤄진 간절함들이 넘실댄다. 우리는 계속 실망해왔다. 하루가 다르게 터지는 채용비리, 입시비리, 바뀌지 않는 청년정책, 주거와 노동 정책. 우리 안의 다양성에 눈감아 버리는 정치인의 발언들. 20대가 느끼는 박탈감은 그거다. 여전히 저 세대에게 개혁이란 누군가가 배제된, 눈앞의 정치적 개혁만이라는 것.

지금도 청년은 계속 말하고 있다. 이 사회는 잘못됐으니, 불평등의 고리를 끊자고. 같이 논의해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지금 우리는 노력의 질을 높이라는 다그침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면서 살아도 안정적인 내일을 그릴 수 있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가 안정의 보증수표가 되게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 그 약속을 실현하는 일에 청년도 함께하고 싶다. 그러니 청년의 박탈감을 무시하지 말아주시라. 분노하는 청년과 함께 논의해주시라.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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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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