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김포시의회 의장의 가정폭력에 의한 부인 사망 사건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공인(公人)이 아내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폭력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자유한국당 소속의 시의회 의원 및 국회의원들의 주장을 볼 때 이 사건이 정당 간의 논쟁거리로 뒤바뀌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부실한 공천절차 속에서 자격미달의 시의원을 임명한 민주당이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출처:경향신문DB

가정폭력은 여성인권의 바로미터이자 ‘사적영역’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고문과 유사하다고 한다. 노인폭력, 아동폭력 그리고 남성 배우자에 대한 폭력도 있지만 대다수 가정폭력은 남성 배우자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가정폭력은 젠더에 기반한 사회적 폭력현상이다. 가정폭력이 길거리나 가정이 아닌 공간에서 행해지는 폭력과의 차이는, 그것이 부부, 부모자녀와 같이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반복되기 쉽고 가정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발생하여 잘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7년 발표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폭력을 경험한 대다수 피해자들이 폭력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그냥 당하고 있었다”가 42.8%, “자리를 피하거나 집 밖으로 피했다”가 33.3%로 대다수 피해자가 별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주위에 도움을 청했다”는 4.9%, “방어하거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맞대응을 했다”는 20.6%로 25% 정도에 그쳤다. 만약 길거리에서 동성 간에 물리적 폭력이 발생했다면 과연 이런 대응 경향이 나타났을까. 가정폭력은 공론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고약한 범죄이다. 최초 사건 발생 6년 이후에야 보호시설이나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전체 응답자의 39.1%에 달했다. 신고하기까지 오래 걸린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기관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서” “자녀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창피해서” “도움을 요청해도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배우자가 아는 것이 두려워서” 등으로 응답했다. 이렇게 가정폭력은 지속적이기 쉽고 표면화하기 어렵다. 가정폭력의 폭력성을 일반적 형사사건의 기준보다 더욱 무겁게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응급조치나 긴급임시조치(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와 제지, 상담소, 보호시설의 인도 등)가 실효성 있게 행해지는지도 미지수이다. 경찰에 신고했던 피해자들도 “경찰관들이 피해자의 충격과 공포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다”는 항목에 부정적 응답을 한 경우가 35.7%였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응답을 한 경우가 절반에 이르렀다. 사법경찰이 가정폭력 사건에 대응할 때 젠더 차별구조에 대한 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인식이 없다면 ‘가족’이란 친밀성의 가장 아래 폭력이 허용되는 치외법권으로 존재할 것이다.  

특히 가해 배우자가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고 유능한 인물이라면 여성 피해자는 더더욱 폭력을 공개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개는 자신뿐 아니라 자녀가 누리는 사회경제적 지위, 나아가 남편이 속한 조직의 명망까지 추락시킬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법 제4조 제1항에는 “누구든지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2항에는 아동교육이나 노인치료, 장애인 시설 혹은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종사자 등은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우리들’이 선뜻 가정폭력을 신고할 수 있었을까. 가정폭력(범죄)으로 확신할 수 없어서, 개입했다가 오히려 비난을 받을까봐, 아니면 이후의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게 될지 두려워서 신고를 못하지 않았을까. 다른 한편, 법 제9조에서 검사는 가정폭력 사건의 성질 등을 고려해서 형사사건이 아니라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고 이때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렇게 피해자에게 그 처벌 여부를 묻는 것은 주위 공동체가 가정폭력 개입을 자제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쌍의 태도이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의 일’이라는 태도이다. 전 김포시의회 의장의 가정폭력에 대해 정말 주위에서 아무도 몰랐을까. 부인의 가족, 친족, 친구, 이웃, 학교, 복지단체들은 다 어디에 있었을까. 폭력에 개입하고 조언해 줄 커뮤니티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결말을 가져오지는 않았으리라. 그래서 이 사건의 일차적 책임자는 폭력 행위자이지만, 가정폭력은 ‘잘못된 일’이라고 명료하게 발설하지 않았던 다층적 방관자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거기에 여당과 야당이 나뉠 수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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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7일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강화한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경찰이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해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또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면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지난달 결혼생활 내내 폭력을 행사했던 남성이 이혼 후 전처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사회문제화되는 상황에서 정부 대책이 신속하게 나온 것은 환영할 만하다.

정부 대책은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즉시 분리시키고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가정폭력처벌법상 취할 수 있는 응급조치 유형에 기존의 폭력행위 제지 등 외에 ‘현행범 체포’가 추가된다. 또 가해자가 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위반했을 때 징역 또는 벌금형 처벌이 가능토록 했다. 지금은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과태료 부과가 고작이어서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상습적이거나 흉기를 사용한 가정폭력 사범은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는 등 처벌도 강화된다. 가정폭력 사범의 구속률이 1%에도 못 미치는 등의 기존의 미온적인 수사 관행을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폭력상담소의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유예해주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 대상에서 폭력의 정도가 심하고 재범 우려가 높은 가정폭력 사범은 배제키로 했다. 이 제도는 여성계 등에서 가정폭력 사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핵심이라며 폐지를 요구해왔던 것이다.

그동안 경찰과 사법당국은 가정폭력을 ‘집안 일’로 치부하면서 미온적으로 대처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신고도 제대로 못하고 공포에 떨며 살아야 했고, 폭력의 악순환은 계속됐다. 이번 대책은 가정폭력과 관련해 그동안 제기돼 온 개선 요구들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문제는 현장에서 얼마나 제대로 적용되는가다. 가정폭력 자체가 미묘한 문제이다 보니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컨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건을 그대로 종결하는 것이 아니라 재발 가능성과 폭력의 수위 등을 면밀히 분석해 조치를 취할지 여부 등을 판단해야 한다.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최선의 처리가 무엇인지 고심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대책이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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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사건 신고는 급증하고 있지만 경찰이 가정폭력 사범을 검거해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사례는 10건 중 1건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3~2017년 5년간 가정폭력 신고는 약 116만건이었다. 이 중 지난해 접수된 신고는 28만건으로 2013년(16만건)에 비해 74%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신고 건수 대비 가정폭력 사범 검거율은 13%에 불과했다. 또한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검거된 가정폭력 사범 16만4000여명 중 구속된 이들은 1632명으로 1%에도 못 미친다. 경찰이 이처럼 가정폭력을 미온적으로 수사하면서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에 노출되고 재범의 악순환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가정폭력 재범률은 2015년 4.1%에서 올해 8.9%까지 높아졌다.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여성단체들이 주최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시민사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한 아내가 전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강서구 살인사건이 국가의 방관 때문에 발생했다면서 강력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권도현 기자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전부인 살해사건도 결혼생활 20년간 지속된 가정폭력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다가 발생한 비극이라는 지적이 많다. 29일에는 한국여성의전화 등 690개 여성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검찰·법원 등 국가가 가정폭력을 방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증언에 나선 한 피해자는 16년 동안 가정폭력을 당한 뒤 이혼한 전남편이 죽이겠다며 찾아와 문을 부수어도 경찰은 “아줌마가 잘하세요”라는 말만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다는 또 다른 피해자는 흉기를 들이대고 죽이겠다는 아버지를 신고했더니 경찰에게서 “그래도 아빠인데 어떻게 신고를 하니”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피해자가 죽어야만 가정폭력이 끝난다”는 이들의 외침은 가정폭력에 대처하는 사회와 국가의 무능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3월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이 피해자의 인권보호보다 가정의 유지와 복원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한국의 가정폭력대응시스템이 법에서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여성계에서는 가해자가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을 어겨도 과태료만 내면 되고, 검찰은 가해자가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받는 조건으로 기소하지 않는 등의 법적·제도적 허점을 지적하고 있다. 가정폭력은 더 이상 ‘집안 일’로만 치부될 수 없다. 정부는 가정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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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감추어졌던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가 진실의 햇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처받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또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와 이어지며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견고한 장벽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모든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 동안 뿌리내렸던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인 권력구조가 가해자에게 압도적인 권력을 주었고,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침묵을 강요해왔다. 지금 드러나는 수많은 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된 가장 큰 이유다.

같은 이유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가 여기에도 있다. 한국에 머무는 많은 이주여성이다. 얼마 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12.4%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농촌 노동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식당, 공장에서도 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성폭력은 빈번하다. 혼인이주 여성의 성폭력이 동반된 가정폭력도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성폭력 사건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성평등 실현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특히 이주여성들은 공장, 가정, 학교 등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외부기관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다. 또한 성폭력 피해에 대처할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무엇보다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져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이 언어의 부담 없이 자국어로 소통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대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통합 지원 기관의 설립과 경찰·검찰·법원의 사법적 지원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후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처음부터 이주여성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다. 우리나라의 출입국 정책에 따르면 이주여성은 너무도 취약한 지위에 놓여 있다. 한국 사람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매번 자신의 체류자격을 연장하려면 한국인 남편이 함께 출입국관리소에 동행해야 한다. 두 사람이 진정한 결혼생활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심사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진정한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정부 기관이 심사한다는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이러한 심사를 처음 혼인신고 이후에도 매년 반복해야 한다.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해도 “신고하면 출입국관리소에 같이 안 가준다”는 말 한마디에 수년 동안 피해를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일터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금의 제도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사장이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자격을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사장이 싫어도 사업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예외적인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사장의 허락 없이 사업장에서 이탈하면 그 순간 ‘불법체류자’가 된다. 사장이 가진 권한은 막강하지만, 책임은 거의 없다. 제대로 된 잠금장치도 없는 낡은 비닐하우스가 이주여성 노동자의 숙소이며, 그마저 사장은 여성 노동자의 숙소를 제멋대로 들락날락한다. 이런 숙소를 제공하고 월급에서 매달 20만~30만원씩 깎는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니 할 말이 없다. 이런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사장의 온갖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정부에서 만든 제도가 이주여성을 열악한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면,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지속해서 은폐될 수밖에 없다. 어떠한 법과 제도도 사람을 누구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뒤늦게나마 그동안 감추어진 여성들에 대한 폭력의 역사를 햇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게 한 위대하고 용감한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어느 곳에서 눈물 흘리는 피부색 다른 이주여성에게도 울림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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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의 목소리는 울분에 차 있었다. 가정폭력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했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 격리 등의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정폭력 가해자를 옹호하고 비호했다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없다 싶었는데 이어진 그녀의 말에 더 기가 막혔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과 대처는 어쩌면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요?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기자회견 구호가 30년 전과 똑같아요. 다르게 정해보려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몰라요.” 이럴 땐 분노보다 절망감이 앞선다.

올 상반기에만 4565명이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됐다. 폭행, 스토킹, 온라인 성범죄 등 주로 여성들을 겨냥한 ‘젠더폭력’은 갈수록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으나 가정폭력처럼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격리해 보호하는 조치도 없고 강력 대응할 법적 근거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출처: 경향신문DB

사건은 이랬다. 지난 2일 저녁 8시경, 한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했다. 그는 “자녀를 보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버텼다. 흔히 ‘쉼터’라고 부르는 보호시설은 단어 뜻과 달리 쉬는 곳이 아니다. 무자비한 폭력에서 탈출해 갈 곳 없는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받기 위해 찾는 피난처이자 삶의 마지막 보루다. 이곳에 가해자가 무단 침입한다는 것은 쉼터 거주자들에게는 공포와 위협이자 또 다른 폭력임을 의미한다.

그날 그 가해자가 보자고 했던 아이는 엄마와 함께 쉼터에 온 뒤 꿈을 꿨다고 한다. “꿈에서 몸에 개미가 자꾸 나와 옷을 열어보니 아빠가 나왔다”며 엄마에게 “너무 무섭다. 여기는 안전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가정폭력에 대해 무지하고 무능했으며 피해자 보호라는 책무를 방기한 채 오히려 가해자 편에 서서 사태를 악화시켰다. 피해자와 활동가가 보호시설 위치를 노출시켰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하는가 하면, “가해자가 자녀만 보면 돌아갈 사람이다”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며 가해자를 격리시켜 달라는 보호시설 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은 한 수 더 떴다. 가해자에게 “피해자들이 빠져나가야 하니 이동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단다.

결국 격리조치돼야 할 가해자는 남고 11시가 넘은 한밤중에 피해자가 공포에 떨며 피신해야 했다. 활동가들이 현수막으로 가해자의 시야를 가리며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취하는 동안 가해자는 활동가들의 사진을 찍으며 위협했지만 경찰은 이마저도 방치했다.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피해자 보호시설을 설치한 지는 30년이 흘렀다. 지난 5년간 신고건수는 20배가량 늘었지만 제대로 사법처리된 것은 극히 드물다. 여성단체들은 최근 ‘1OF10000TO10000OF10000’이란 암호 같은 숫자를 새긴 팔찌를 나눠주며 가정폭력 추방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 1만명 중 신고한 이는 130명에 불과하며 이 중 1명만이 구속되는 현실에서 범죄자 모두 제대로 처벌받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하는 간절함을 담은 것이다.

가정폭력에 대응하는 경찰의 안이하고 미흡한 조치로 피해를 신고한 여성이 가해자에게 더 큰 보복을 당하는 일은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된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번 사건 이후 여성단체가 전개하고 있는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에는 10만명가량이 동참해 자신이나 이웃이 당한 사례를 줄지어 고발하고 있다. 이웃의 가정폭력을 신고했더니 현장에 온 경찰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 사람 원래 자주 그러는 사람이고 여자도 드세고 자꾸 대들어서 그렇다”고 말하는가 하면 신고한 이웃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가해자를 전혀 제지하지도 않았다는 등의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의 안이한 인식과 대응, 가해자에 대한 미진한 처벌은 현행법의 한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고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의 경미하고 사소한 다툼이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지 않고서는 이런 법 조항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 경우 가정폭력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란 더욱 어렵다.

가정폭력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성별 권력관계에 근원을 둔 성차별이며 젠더폭력이다. 가정폭력이 심각한 이유는 신체적으로 때리고 공격할 뿐만이 아니라 여성의 온 삶을 통제하고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훼손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오늘 쓴 글 중 새로운 관점이나 이론은 없다. 지겹지만 30년 동안 제기된 주장을 고스란히 다시 담았다. 여성단체들이 외쳐온 것처럼 “가정폭력은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며 인간적 삶과 존엄한 삶의 복원을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세상이 이런데 민주화가 됐다고, 촛불혁명을 완수했다고 자축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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